[인물포커스]1인극 '셜리…' 열연 김혜자씨

  • 입력 2001년 7월 19일 18시 44분


《“저 요새 최고로 행복해요.” 일인극 ‘셜리 발렌타인’ 공연을 마치고 무대에서 내려온 김혜자(金惠子)가 달뜬 목소리로 말했다. 흑요석처럼 고혹적인 눈망울이 사람을 빨아들일 듯 반짝이고 있었다. 제일화재 세실극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의 커튼콜에 답하는 그의 얼굴엔 처녀같은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이 사랑스러운 여자가 TV드라마 ‘전원일기’에서 방바닥에 걸레질을 하던 그 어머니 맞나 싶다. 김혜자의 이름 옆에 괄호열고 나이를 쓰지 않았다고? 여배우의 나이는 배역 속 나이와 같은 법. ‘전원일기’에서 그가 칠십넘은 할머니였다면 지금은 셜리 발렌타인과 똑같은 마흔다섯이다. “정말이라니까요. 내가 자꾸 마흔다섯살인 것처럼 느껴져요. 다시 젊어지고 싶다는게 아니예요. 난 딴사람보다 굉장히 오래 산거 같아. 한 수천년쯤. 배역 속의 그 인물들을 다 살아냈으니까. 맞아요, 나이를 쓰려거든 ‘수천살’이라고 해주세요.”》

▼배우▼

여자-어머니-배우. 이 가운데 그자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은 배우로서의 김혜자다. 셜리가 되어 무대에 오르기 전까지 그는 ‘내가 살고 싶은 삶은 죽기 훨씬 전에 죽어버린’(셜리의 대사) 상태였다.

“요 2, 3년동안, 그러니까 ‘장미와 콩나물’‘마요네즈’가 끝난뒤 배우로서 나는 죽는 일밖에 없구나 싶었어요. 미칠 듯 빠져들고 싶은데 빠져들만한 배역이 없는거예요.”

연극 속 셜리도 혼자서 벽에다 대고 얘기해야만 하는 여자다. 다큰 딸아이가 아이스크림 먹고 싶다고 하면 ‘자동 엄마’처럼 냉큼 만들어주고, 남편에게는 목요일마다 고기요리를 해바쳐야 한다. 어느날 셜리에게 그리스 여행이라는 탈출구가 열린다. 비행기를 탈 때 셜리는 지붕위에서 뛰어내리는 심정이었다. 목이야 부러지든 말든.

“그래요. 나한테는 이 연극이 지붕에서 뛰어내리는 거였어요. 좋아, 되든 안되든 내가 살아있다는 걸 나한테 증명해 보일거야, 그랬어요. 얼마나 필사적으로 씨름을 했는지 매일새벽 한두시에 눈이 번쩍번쩍 떠졌어요. 그래서 셜리보고, 제발 좀 가줘 나 자고싶어, 했어요. 이제 난 셜리예요.”

안락하지만 진공포장이 된 듯한 부엌에서 때로는 넋두리하듯, 때로는 처연하게 주부의 절망을 연기하던 김혜자는 2막 에메랄드빛 그리스 해변에선 완전히 다른 여자가 된다. 청동빛이 도는 흑단같은 머리를 리본으로 묶고, 날개의 이미지를 내뿜는 하얀 스커트를 입고, 맨발엔 반짝이는 발찌를 하고 있었다. 그의 손 끝에 걸린 스카프조차 파르르 떨며 연기를 하는 것 같았다.

“이 연극을 잘못하면요, 여자가 바람피우고 해방됐다는 걸로 보일수 있어요. 그 점에 굉장히 주의했어요. 셜리가 그러잖아요. 남편에게도 휴가가 필요해, 살갗에 햇볕을 느낄 필요가 있어. 난 이 연극이 인간의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상처투성이가 된 셜리는 자신을 진실로 사랑하게 되면서 다른 사람도 볼수 있게 되는 거예요. 맨날 제 생각만 하던 여자가 눈을 뜬거죠. 나같으면, 그리스에 남아서 남편과 친구처럼 지낼수 있을 것 같아요.”

배우라는 것이 정말 좋다는 것을 절감한다며 그는 크게 숨을 쉬었다. 자신이 연기하기에 따라 보는 이에게 깊은 울림을 전달할수 있으므로. 그러다 금세 샐쭉한 표정으로 “그런데 영원한 건 없잖아요. 이 행복이 또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쓸쓸해져요”했다. 한마디 한마디 하는 모습이 그대로 모노드라마였다.

▼어머니▼

가장 한국적인 어머니상(像). 배우 김혜자를 20년동안 가두어놓은 이미지다. 이미지가 본질을 훨씬 능가해버려서 도망갈래야 도망갈수 없고, 끝을 낼래야 끝을 낼수도 없었다. 80년에 처음 ‘전원일기’를 시작할 때만 해도 이 드라마가 이렇게 오래가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작가 김정수씨가 만들어놓은 이미지예요. 정말 지혜롭고 아름다운 심성을 지녀서 모든 사람들이 우리 어머니라고 믿고싶어하는 모습이죠. ‘전원일기’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위로를 받는거 나도 알아요. 하지만 난 맨날 어머니인거야. TV개편때마다 내게 오는 역할은 살아숨쉬는 어머니가 아니었어.”

한없이 따뜻하고, 속깊고, 결코 마르지 않는 사랑을 지닌 고향의 어머니. 그러나 사람들은 알까. 그런 어머니이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어머니 자신에게는 때로 견딜수 없는 족쇄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어머니 역시 여자이고 사람이라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건 아닐지.

혹시 김정수씨를 원망한 적은 없는지 물었다. “그래서 그이는 10년쓰고 도망갔잖아”하고 그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사람들은 내가 현모양처인줄만 알죠. 아니예요. 난 살림도 못하고, 대본만 받으면 그날부터 대본속의 인물이 돼버려서 식구들은 잊고 살았어요. 그런데도 남편과 애들은 배우니까 당연하다고 인정을 해주었죠.”

여섯 살때 첫무대에 오른 김혜자였다. 세브란스의대생들의 연극에서 공수병으로 죽어가는 아역이었는데 얼마나 실감이 났던지 관객들이 “혜자를 살려내라”고 고함치기도 했다.

62년 KBS탤런트 1기로 뽑혔지만 너무나 ‘스마트하게 생긴’ 남편을 만나는 바람에 결혼해 들어앉았다. 맘껏 조물락거리던 아이가 엄마손을 벗어나자 지루해진 그는 둘째 아이를 가진 몸으로 다시 연극을 시작했다. 69년 MBC에서 ‘개구리 남편’을 할때는 아기낳은지 사흘째 되는 날 엄동설한에 야외녹화를 했던 그였다.

89년 드라마 ‘겨울안개’에 매달리던 어느날 새벽, 김혜자는 갑자기 눈앞에 길이 환히 뚫리는 듯한 경험을 했다. 소리꾼이 득음(得音)을 한 듯 이제 세상을 다 알아버린 느낌. 드라마에서 “암입니다”하는 의사의 말을 들을 때는 가슴부터 등짝까지 휑하니 구멍이 나서 온몸이 시릴 지경이었다.

“그래서 난 배우로서 잘해야 돼요. 내 가족들에게 상처를 주면서 배우의 길을 걸었기 때문에 배우로서 떳떳지 못하면 난 정말 면목이 없는 거예요. 그래야 내가 만나는 아이들한테도 떳떳할 수 있어요.”

그가 말하는 ‘아이들’이란 92년부터 월드비전의 친선대사활동을 하며 만나온 아프리카 방글라데시 북한의 아이들이다. 자신이 나섬으로써 보다 많은 사람들이 굶주리는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게된다면 그보다 다행스러운게 없다. 본인이 원하든 원치않든, 이미 김혜자는 시청자에게도 세상의 불쌍한 아이들에게도 영원한 어머니였다.

▼여자▼

10년전 기자는 그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어머니상으로서의 김혜자를 탐구하는 자리였는데 만나보니 빛나는 눈동자며, 자그마한 손이며, 그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는 양이 천상 여자였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어른한테 이런 말하는건 실례지만 정말 섹시하다는 느낌이 든다”고 했더니 그는 까르르 웃으며 “괜찮아. 나 그런말 좋아해. 남자고 여자고 섹시하다는 건 최고의 찬사 아니예요?” 했다.

‘마요네즈’에서 꼬리치듯 살랑 흔드는 발칙한 뒤태, 영화 ‘만추’에서 발가락을 오그러뜨리는 것으로 묘사한 절망끝의 엑스터시, 드라마 ‘모래성’에서 “당신에겐 내가 여자로 안보이나요?”하고 내뱉던 여자의 처절함은 ‘셜리 발렌타인’에서 절정에 올라있다.

옆에 있던 연출자 하상길씨가 말했다. “그 연배에 여자냄새를 낸다는게 쉽지 않은데 선생님은 그게 굉장히 강해. 외모로 보면 눈빛 때문이지. 선생님은 자기 앞에 있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특별한 능력이 있어요. 그런데 마음은 소녀야. 순수하면서도 자신이 여자라는 부분을 놓치지 않는거야.”

연기를 시작할 때 “톨스토이같은 대문호처럼 좋은 배우는 세상에 큰 영향을 미칠수 있다”던 아버지의 격려가 연기철학이 되었다면, 열한살 연상의 남편은 소녀같은 아내와 동화처럼 살아준 사람이었다. 셜리가 “자기를 좋아하고 인정해주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여자는 다시 피어나는 거야. 열여덟살이든, 마흔네살이든, 예순두살이든…”하고 말한 것처럼.

그런 남편이 3년전 암 판정을 받은지 한달반만에 세상을 떠났다. 연기의 슬럼프 속에서도 ‘남편이 원하는 나는 이게 아니야’하는 생각에 더욱 괴로웠다(그런데 이 대목에서 이 소녀같은 여배우가 웃기는 얘기를 해줬다. 남편 문상을 온 사람중에 무좀양말을 신고 온 이가 있었는데 그 발가락모양이 어찌나 우습던지 우는척하고 얼굴을 가린채 웃었다나). 배우로 돌아온 그를 보고 이제는 남편도 저세상에서 마음을 놓을 것 같다.

그는 꽃하고도, 강아지하고도 말을 한다. 라일락 꽃향기가 가슴에 스며들 때면 “아, 죽었으면 좋겠다” 싶어진다. ‘정은 늙지도 않아’라는 소설제목처럼 여자로서 그의 열정은 진저리가 쳐질만큼 뜨겁다. 지금도 요염한 표정으로 다리를 꼬고앉아 그는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다. “안녕하세요? 난 한때 당신의 아내였어요. 또 애들의 어머니였구요. 하지만 지금은 다시 김혜자가 됐답니다. 함께 와인 한잔 하시겠어요?”그와 한잔 나눌수 있는 우리는 남의 나라 배우 메릴 스트립이 부럽지 않다.

<만난사람〓김순덕 차장>yuri@donga.com

▼김혜자는…▼

△서울 출생

△경기여고 졸업

△이화여대 생활미술과 중퇴

△TV드라마 ‘신부일기’‘학부인’‘엄마 아빠 좋아’‘그리워’‘당신의 축배’‘모래성’‘겨 울안개’(88년 MBC방송대상)‘여자는 무엇 으로 사는가’‘사랑이 뭐길래’(92년 방송대 상)‘여’‘전원일기’‘자반고등어’‘엄마의 바다’‘그대 그리고 나’‘장미와 콩나물’(99 년 방송대상) 등

△연극 ‘19 그리고 80’(88년 동아연극상 연기 상) ‘우리의 브로드웨이마마’(91년)

△영화 ‘만추’(83년 필리핀 마닐라국제영화 제 여우주연상) ‘마요네즈’(99년)

△최장수 전속광고모델(제일제당 27년간)

▼김혜자의 말…대사…▼

△어차피TV는예술이아니래요〓내가하도작품을고르니까누군가가이렇게말했다.나는너무나서운해서“예술이라고생각하고온몸을던져도힘드는데어떻게처음부터아니라고할수있느냐.난그렇게는못한다”고했다.

△잊어버리고김정일배지안달면어떡해요?〓북한을방문했을때궁금해서안내원에게물어봤다.“사모하는분이므로절대로잊는법은없다”는대답.통일이쉽지는 않겠구나싶었다.

△내가방은꼬리표를달고콘베이어벨트에놓여졌지.집을향해서말이야.검은구멍속으로사라지는가방.그때난 알았어.그것이원하지않는내삶의무게였다는걸〓셜리의이대사를할때마다속으로나는통곡을한다.셜리의마음이절절하게와닿아서.

△왜여자의삶은변하지를않나몰라〓80년대연극‘위기의여자’부터2001년의 ‘셜리발렌타인’까지,이연극이쓰여진 영국부터공연중인우리나라까지,소외받는여성의삶은여전하다며.

△난이제나자신을진실로좋아하게되었어요.뛰어나지도못하고역사에기록될만한인물도못되지만그래도난살아있는걸요〓이연극을본관객들도자기자신을사랑하게되었으면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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