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국내금융도 지금 혁명중-1]"돈 좀 쓰세요" 낮아진 은행 문턱

  • 입력 2001년 6월 25일 18시 36분


98년 6월29일 충청 동남은행 등 5개 은행이 문을 닫았다. 그 후 만 3년 동안 134조7000억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되고 554개 금융기관이 사라졌다. 3명에 1명꼴로 금융기관 직원이 직장을 떠났다. 무려 9만명이다.

또 금융구조조정으로 인한 개혁의 성과도 적지 않다. 대출 세일이 벌어지고, 고객의 발길을 끌기 위한 아이디어싸움이 치열하다. 카드 인터넷뱅킹 홈트레이딩 등 최첨단을 달리는 분야도 있다. 동시에 국내 금융기관들은 물밀듯이 몰려오는 외국자본과의 글로벌경쟁에 직면해 있다.

변하지 않으면 생존대열에서 떨어져 나가야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이다.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국내 금융혁명의 현장을 시리즈로 소개한다.

▼글 싣는 순서▼
1. 대출세일 시대
2. 쏟아지는 신상품
3. 신용 카드 서비스
4. 인터 넷 빌링
5. 인터 넷 뱅킹
6. 바뀌는 투자열풍
7. 바뀌는 보험시장 판도
8. 프라이빗 뱅킹 확산
9. 투자은행업 등장
10. 글로벌체제 편입

경기 안산시 반월공단에 있는 한 중소기업의 자금부장인 A씨는 최근 세상이 많이 바뀌었음을 기분좋게 느끼고 있다. 불과 3년 전만 해도 은행에서 대출 받으려면 부동산담보는 물론 이른바 ‘백’을 동원해야 했는데 요즘은 은행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찾아와 돈 좀 쓰라고 애원하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지난달 5년 이상 대출을 받아오던 한 국책은행과 거래를 끊고 민간은행으로 거래를 옮겼다. 대출금리를 깎아준 데다 다른 부대서비스도 많이 해주겠다고 약속한 데 따른 것이다.

마이너스대출을 받으려고 국민은행을 찾은 회사원 이모씨(34)도 은행의 문턱이 낮은 것을 실감했다. 몇 년 전처럼 보증인을 세우고 여러가지 서류를 내지 않아도 본인 서명만으로 1500만원까지 쓰라는 말을 들었다. 금리도 연9.75%이며 1년이 지나도 가산금리는 없다는 설명이 덧붙여졌다.

굳게 닫혔던 은행 보험 카드 신용금고 등 금융기관의 대출 물꼬가 활짝 열리고 있다. 금융기관들이 우량 기업과 개인을 대상으로 ‘대출세일’에 나서고 있다. 인터넷뱅킹을 이용하면 대출금리를 0.5%포인트 깎아주기도 한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전까지만 해도 은행에서 대출 받는 것은 일종의 특혜였지만 이제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금리가 자유화되면서 대출도 ‘경쟁원리가 작동하는 시장’으로 넘어온 것이다.

당연히 금융기관간 대출경쟁도 치열하다.

외국계 은행인 HSBC는 작년 4월1일부터 부동산담보대출의 설정비를 면제해주기 시작하자 모든 금융기관이 이를 따라해 담보대출시장의 ‘관행’이 바뀌어버렸다.

담보도 무척 다양해져 금강신용금고(강원)와 기업은행은 개인택시면허증을, 부산의 한마음신용금고는 수산물, 새한금고(서울)는 건물 옥상에 세워진 전광판을 담보로 잡아주고 있다.

외국인에게 경영권이 넘어간 제일은행은 ‘퀵캐시론’을 판매 중이다. 샐러리맨이나 자영업자에게 50만원에서 700만원을 연 13.9∼22.9%에 빌려주는 이 상품은 신용금고의 할부금융회사 상품에 더 가깝다. 대표적인 업종파괴 상품인 셈.

삼성캐피탈은 이런 공세에 맞서 ‘아하론패스’를 선보였다. 신용도에 따라 30만∼1000만원을 은행의 마이너스대출처럼 빌려준다. 서울의 현대스위스금고도 ‘체인지론’을 선보였다. 사채를 쓰고 있는 사람에게 200만원까지 신청한 당일에 대출한다. 금리는 월4%(연48%)로 비싸지만 사채를 쓰는 사람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삼화신용금고(서울)가 동대문상가 상인을 대상으로 도입한 ‘일수대출’, 푸른신용금고(서울)가 의사를 대상으로 한 ‘닥터허준론’, 한솔신용금고(서울)가 지방 고객을 찾아가는 ‘출장대출’등도 틈새 상품.

금융기관이 이처럼 신용대출에 적극적인 것은 꼭 고객을 위해서 만은 아니다. 사실은 자체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현재 국고채 수익률이 연6%, 회사채수익률이 7%인데 반해 신용대출 금리는 10%를 넘는다. “1인당 영업이익을 2억2000만원으로 끌어올리라는 수익위주 경영이 자리잡으면서 은행 등 금융기관이 우량 고객에게 신용대출을 늘리기 위한 경쟁을 필사적으로 펼치고 있다”(하나은행 김종렬 부행장)는 설명이다.

그러나 아직도 국내 은행의 신용대출 비중은 40%선에 머물고 있다. 금융기관이 신용대출에 목을 매고 있지만 적극적으로 신용관리를 할 수 있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다는 것. 중소기업도 절반 이상이 담보를 요청하는 금융기관 때문에 자금조달에 어려움이 많다고 불평을 털어놓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최희갑 수석연구원은 “국내은행의 신용대출비율은 미국(59%)이나 국내에서 영업중인 외은지점(80%)에 비해 크게 낮다”고 지적하고 있다. 지난 3년 동안 은행의 대출문턱이 많이 낮아졌지만 그것은 일부 우량 고객에 한한 것일 뿐 아직 가야 할 길은 멀다는 얘기다.

이색 대출상품 현황

취급기관상 품특 징
제일은행퀵캐시론직장인과 자영업자. 연 13.9∼22.9%로 50만∼700만원 대출
현대스위스

금고

체인지론사채를 대출로 바꿀 경우 200만원까지. 연 48% 적용
기업은행출자전환옵션

대출

벤처기업에 대해 일정기간이 흐른 뒤 일정가격에 출자전환 조건으로 대출
삼성캐피탈아하C&C론신용등급이 없는 자영업자 등에 100만∼500만원, 18.9∼22.9%
삼화금고일수대출동대문 상인 대상, 1000만원까지 대출해준 뒤 매일 원리금 상환. 금리는 연 16.2%
삼성생명스피드오토론무보증으로 자동차 구입자금 연 8.9∼9.3%로 대출
HSBC주택담보대출담보설정비를 면제, 대출금리는 연 7.9%
LG캐피탈LG스피드론국내에서 처음으로 ARS나 인터넷으로 1000만원까지 대출
신한은행공무원대출신한비자카드 회원 공무원에게 5000만원까지
농협

주택은행

사립학교

교원대출

농협은 2000만원, 주택은행은 6000만원까지
한솔금고 등캠퍼스대출대학(원)생에게 100만∼200만원을 연19.5∼28%에 대출
은행 금고이색 담보수산물 개인택시면허증 옥상전광판 공모주 등

(자료:각 금융기관)

▼CSS(Credit Scoring System·신용평점시스템)란▼

직업 소득 나이 등 개인의 신상정보와 거래실적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개인별 신용점수를 준 뒤 이것을 바탕으로 대출한도와 대출금리를 결정하는 것. 다른 금융기관에서 연체한 사실이 있는지, 신용카드거래실적은 어떤지 등 해당 금융기관 외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도 평가할 때 고려된다.

과거 창구직원이 경험에 의존해 주먹구구식으로 대출을 결정하던 것과 달라진 것. 통계적 기법을 활용해 분석함으로써 부실채권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대출을 받으려는 고객으로서도 자신의 정확한 신용상태를 알 수 있다. 대출을 거절당했을 때도 왜 대출받을 수 없는지 객관적 자료와 함께 설명을 들을 수 있다.

국민은행이 2000년 6월 CSS를 도입한 것을 전후로 국내 은행과 생명보험 및 카드 캐피털회사 대부분이 도입하고 있다.

CSS가 도입된 뒤 개인이 해야할 일은 스스로 신용관리를 해야 한다는 점. 연체할 경우 신용불량자로 낙인찍혀 모든 금융기관에서 돈 빌리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또 돈이 필요할 때는 곧바로 사채를 쓰지 말고 은행이나 보험 또는 캐피털 회사에 가서 자신의 신용을 평가받아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홍찬선기자>hc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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