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웬디 셔먼 "美 조건없이 대북협상 재개해야"

  • 입력 2001년 6월 6일 18시 41분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미국의 대북정책 실무책임자였던 웬디 셔먼 전 국무부 대북정책조정관은 현재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13일 통일연구원이 개최하는 ‘한반도 평화구축과 국제협력’ 주제의 국제학술회의 참석차 곧 방한할 예정인 그녀를 워싱턴에 있는 사무실에서 만나 대북정책 등에 대한 견해를 들었다. 》

-부시 행정부의 강경한 대북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우선 3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 방미시 부시 행정부가 대북 대화 재개신호를 보낼 준비가 되지 않았던 것에 실망했다. 유감스럽다. 부시 행정부로선 기회를 놓친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새 행정부가 대북정책을 검토할 시간을 필요로 하는 점은 이해한다. 부시 행정부가 검토를 마치는 대로 대북 포용정책과 대화재개를 원한다는 신호를 틀림없이 보내고 대화에 전제조건을 달지 않기를 매우 강력히 희망한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은 구소련과의 대화에서 “신뢰하되 검증하라”는 말을 남겼지만 부시 행정부는 북한에 대해 “검증한 뒤 신뢰하라”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검증문제에 대한 생각은….

“검증할 수 없는 군비통제에 대해서는 어떤 행정부도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어느 정도 만족할만한 수준에서 검증하느냐가 문제이다. 구소련과의 군비통제도 검증엔 제한이 있었다. 검증은 신뢰가 아닌 결과에 관한 문제로 우리가 결과를 모니터하고 볼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원했던 것은 만족할만한 검증이 가능한 미사일 협상을 북한과 벌이는 것이었다.”

-북-미 관계 진전을 위해 부시대통령과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이 만날 것을 제안한 바 있는 데….

“북-미 관계의 커다란 돌파구 마련은 결국엔 지도자 레벨에서만 가능하다. 특히 북한은 김정일 위원장이 혼자서 모든 것을 결정한다. 미국은 대통령 외에도 의회 언론 여론이 있어 사정이 좀 더 복잡하다. 그러나 양국의 지도자가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올 것이라고 믿는다. 부시 대통령은 이 문제에 어떤 식으로든 관여해야 할 것이다.”

-부시 행정부가 미사일방어체제 추진을 위해 북한 미사일 문제를 외교적으로 해결하지 않을지 모른다는 관측이 있는데….

“부시 행정부가 미사일방어체제와 대북 협상간에 우선 순위를 정하려 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선택이 될 것이다. 두 가지를 동시에 추진할 시간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대화를 통한 해결이 가능하다면 그쪽이 미사일방어체제 추진보다 돈과 외교적 비용이 덜 들기 때문에 이를 마다할 정권은 없을 것이다.”

-김정일 위원장이 클린턴 행정부 말기에 미국으로부터 매년 10억달러를 보상받는 조건으로 미사일 프로그램 폐기를 시사했다고 밝힌 바 있는데 당시 북한에 어떤 형태로든 보상을 고려했는가.

“미국은 어떤 나라가 국제적으로 해서는 안되는 일을 중단하는 대가로 어떤 보상을 하지 않는다. 다만 북한이 대량살상무기 확산 문제에 대한 우리의 우려에 부응하는 조치를 취하면 양자 관계가 개선돼 우호적 차원에서 어떤 혜택이 뒤따를 수는 있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에 결코 10억달러의 현금 제공을 고려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며그렇게 해서도 안될 것이다.”

-남북정상회담 1주년(15일)이 다가오지만 김정일 위원장의 서울답방은 아직 실현되지 않고 있다. 왜 그가 서울방문을 미루고 있다고 보는가.

“미국의 대북정책을 지켜보기 위한 것이라는 설도 있지만 다른 생각이 있을 수도 있다. 내가 보기에 그는 어떤 계획을 갖고 추진하는 사람이다. 아직 답방이 이뤄지지 않은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서울방문은 북한과 그 자신, 정권에 문을 열게 될 것이다. 김위원장이 답방하면 국제사회에서 그에 대한 신뢰가 올라갈 것이다.”

-김정일을 만나 본 몇 안되는 서방 외교관으로서 그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그는 지적이고 논의가 가능하며 유머감각과 외부세계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다. 그는 우리에게 자신의 사무실엔 컴퓨터가 3대 있으며 서울의 TV방송과 CNN 방송을 시청한다고 말했다. 내가 그의 서울방문을 촉구하는 것도 그가 세상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대통령의 햇볕정책을 어떻게 보는가.

“김대통령은 평생 인권과 남북 화해를 생각해온 인물로 나는 그를 대단히 존경한다. 햇볕정책은 그동안 닫혀있던 문을 열었기 때문에 성공적이었다. 한국인들이 대북관계에서 더 많은 것을 희망하고 최근 몇 달간 진전이 없는 것에 실망하는 것을 이해하지만 그동안 이룬 것을 기억해야할 것이다.”

-최근 제네바합의의 수정 내지는 개선에 대한 논의가 많은데….

“제네바합의는 영변 핵시설에서 핵물질을 추출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으로 그동안 이행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하루 24시간, 1년 365일 내내 감시활동을 벌이고 있고 한반도 에너지개발기구(KEDO)는 제 기능을 하고 있으며 경수로 공사도 진행중이다. 따라서 합의를 변경하거나 개선할 때는 매우 신중해야 한다. 이 문제에 대해선 경수로 사업비를 가장 많이 부담하는 한국의 발언권이 가장 크다.”

<워싱턴〓한기흥특파원>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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