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소유의 종말

  • 입력 2001년 5월 25일 18시 48분


소유의 종말

제러미 리프킨 지음 이희재 옮김

447쪽 1만5000원 민음사

“더 이상 ‘소유’는 필요하지 않다. 온갖 물건을 빌려쓰고 인간의 경험 세계까지 돈을 주고 사는, 자본주의의 새로운 단계가 시작되었다.”

‘노동의 종말’(민음사)로 유명한 저자 제러미 리프킨은 우리 시대의 현주소를 이렇게 갈파한다. 소유 중심의 자본주의 시대에서는 물건을 사고 파는 것이 우선이었지만 이제는 온갖 유형의 상업 네트워크가 인간 생활을 거미줄처럼 에워싸고 있으며 그 네트워크에 접속하는 일이 관건이라는 것이다. 실물 세계의 방대한 자료를 거느리며 시대 진단의 예지를 발하는 이 책은 ‘노동의 종말’ 후속편으로 읽어도 무방하지만, ‘접속의 시대(The Age of Access)’라는 원제 뒤에 ’하이퍼 자본주의의문화’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먼저 1부는 ‘접속의 시대’가 도래하는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물리적 경제는 움추러드는 반면, 정보와 지적 자산의 뭉치에 얹혀 있는 이른바 신경제 또는 네트워크 경제의 새로운 메커니즘이 조명을 받는다. 이때 접속의 시대를 지배하는 경영학적 전제는 시장의 시대를 지배하던 전제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시장은 네크워크에게 자리를 내주고 판매자와 구매자는 공급자와 사용자로 바뀐다. 예전에는 ‘판매자와 구매자’가 시장의 주역이었다면 이제는 ‘공급자와 사용자’가 주역이라는 것.

이렇게 경제활동의 기본 구도가 달라짐에 따라 기업의 존재 방식도 당연히 달라진다. 생산 중심에서 마케팅 중심으로, 판매 중심에서 (고객과의) 관계 구축 중심으로 궤도 수정하는 기업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2부는 이 같은 자본주의의 새로운 단계가 우리 삶과 문화를 고갈시키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접속의 시대는 모든 인간 경험의 상품화가 가속화되는 시대라는 것이다. 1부의 다소 중립적인 서술과는 달리 저자의 사회학적 진단과 비평이 강하게 개입한다. 지난 수백년 동안 물리적 자원을 소유권이 부여되는 상품으로 전화하는 데 역점을 두어온 우리는 이제 유료로 제공되는 개인적 경험과 오락으로 문화적 자원이 전환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주장이다.

인간의 삶에 의미를 주는 공동의 경험은 미디어 시장으로 끌려 들어가서 상업적으로 개조되고, 공동체가 공유해온 문화가 네트워크 경제에서 자꾸만 파편화된 유료 경험으로 쪼개지면서 접속에의 권리도 자연히 상업적 영역의 품으로 이동한다는 것. 이를 일컬어 ‘문화적 상업주의의 승리’라고 한다.

이 대목을 놓고 이미 서구 학계에서는 논란이 분분하다. 문화 영역과 상업 영역의 이분법이 실제 가능하냐는 반론과 더불어 저자가 ‘접속의 시대’의 어두운 면만 너무 강조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이에 대한 저자의 입장은 단호한 편이다. 에릭 프롬이 현대인에게 ‘소유냐 존재냐’를 다그쳤듯이 이제는 ‘접속이냐, 존재냐’를 깊이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는 것.

그래서, 그는 묻는다. “재산을 소유하는 것보다 접속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는 것이 더 중요한 세상, 문화 자체가 최고의 상품으로 각광받는 세상, 인간 관계에 항상 돈이 개입되고 체험도 돈을 내야만 할 수 있는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바로 이 물음을 매개로 우리는 제러미 리프킨과 본격 대화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의 문제 제기는 1990년대 이후 우리 사회를 화려하게 수놓았던 ‘문화의 시대’라는 명제를 근본적으로 재고하기를 촉구하는 것이다.

그간 경제 경영 방면에서 정보화, 글로벌 경제, 문화 산업 등에 대한 숱한 논의가 소개된 바 있으나 리프킨의 경우처럼 현장감 있는 보고는 드물었다. 개인적으로 우리 지식계에서 이 같은 수준의 시대 진단서를 산출하지 못했다는 점이 퍽 아쉽고 부끄럽다. 번역서인데도 전혀 번역서로 읽히지 않는다. 우리네 사회과학의 번역 풍토에 견주어 볼 때 ‘이보다 더 좋은 번역은 없다’고 감히 단언할 수 있으리라.

김성기(문학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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