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1년 4월 26일 15시 19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인기 여배우 이미연이 직접 선곡했다는 모음집이 200만장이 넘어섰다 하고 '애수' '러브' 등 음악과는 무관한 연예인이 재킷 표지를 장식한 편집 음반도 절찬리에 팔려나가고 있다.
대형 음반 소매상 판매 집계를 보면 10위권 안에 편집 음반이 상당수 포진해 있다. 서울 종로의 한 음반 매장에 가보면 아예 편집 음반 코너를 만들어 놓았을 정도.
음반 1장 가격에 수십 곡의 노래를 담았으니 소비자의 입장에서 구미가 당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최신곡은 물론이요 약간은 시간이 흘러 음반 구입이 어려운 곡까지 수록해 신구 세대가 즐길 수 있다는 명분도 없는 것은 아니다.
방대한 물량을 초저가의 가격으로 덤핑하듯 발매되는 편집음반은 소위 불법 리어카 음반인 길보드 차트를 무색게 한다. 좋은 노래 많고 음질 깨끗한 모음집으로 불법 리어카상을 고사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무기가 아닐까하는 착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최근의 편집음반 붐은 정도가 지나치다는 비판을 벗어나기 어렵다. 국제통화기금 사태 이후 극도로 위축된 국내 음반 시장에서 편집음반은 기성 가수들의 숨통을 끊는 행위라는 지적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편집음반이 속속 발매되면서 정규 음반이 팔리지 않는다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한 인기 가수의 매니저 A씨는 "타이틀곡 반응이 좋아 한 달만에 25만장이 팔렸는데 편집음반이 쏟아져 나오면서 음반 주문이 아예 끊겼다"며 "이미 발표된 노래를 묶어서 쉽게 음반 한 장 만드는 게 장사가 된다면 수억원씩 들여 정규 음반을 제작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편집음반의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외국처럼 저작권 인세제도가 정착되지 않은 우리네 뮤지션들은 자신의 노래가 언제 사용됐는지조차 모르는 상황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신나라 등 도매상 6개사는 최근 음반 기획사와 제작사에 음반유통 안정을 위해 1장을 초과하는 모든 편집앨범의 유통을 중지해달라는 공문을 보냈다.
한 음반 관계자는 "편집 음반이 가요 시장을 극심한 혼란 상황에 빠뜨리고 있다"며 "가수 보호와 음반 문화 발전 차원에서 제작자들의 마인드 전환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도매상의 호소가 음반 관계자들의 마음을 돌려놓을 지는 미지수. 이미 발매된 편집 음반 외에도 보너스 비디오 CD를 포함한 대형 모음집이 여기저기서 준비중이기 때문이다.
편집 음반 문제는 무엇보다도 제작자와 기획사에게 책임이 있다. 한철 장사가 된다고 해서 너도 나도 편집음반을 만드는 것은 국내 가요 시장의 공멸을 부를 수도 있다. 언제까지 뮤지션 양성을 뒤로한 채 지나간 노래의 단물을 빨아먹을 생각인가?
황태훈 <동아닷컴 기자>beetlez@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