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나치의 자식들

  • 입력 2001년 3월 2일 18시 44분


일본이 또다시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침략의 역사를 사죄하지 않는 일본을 보면서 침략을 사죄한 전범국가 독일을 떠올리게 된다. 이같은 상황에서 독일 나치즘에 관한 책 두 권이 나왔다. 나치 전범 후손들의 삶을 추적한 ‘나치의 자식들’과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가 나치즘으로 기울어간 사상적 배경을 살펴본 ‘하이데거와 나치즘’. 나치의 과거사를 극복해간 독일의 사례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

◇독일은 아픔 겪으며 과거사 씻는다

노르베르트 레버르트·슈테판 레버르트 지음/이영희 옮김/254쪽/ 9000원/ 사람과사람

나치의 총통 대리였던 루돌프 헤스, SS친위대 총대장으로 유태인수용소를 만들고 생체실험을 주도했던하인리히 힘믈러, 폴란드 총독으로 있으면서 “나의 총통 히틀러여, 나는 오늘 또 15만명의 폴란드인을 학살했습니다”라고 자랑했던 한스 프랑크, 히틀러의 일급참모이자 나치의 2인자였던 마틴 보르만, 히틀러 소년단을 만들었던 발두어 폰 쉬라흐, 히틀러의 제1후계자로 꼽혔던 헤르만 괴링.

이름만 들어도 섬칫한 나치의 일급 전범들. 이들에 관한 이야기는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들의 자녀들은 어떻게 살았고, 또 지금은 어떤 모습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독일의 부자(父子) 저널리스트가 그들의 비극적 삶을 추적했다. 이 책은 41년의 시차를 두고 나치 전범 6인의 자녀들을 취재한 내용을 담고 있다. 아버지인 노르베르트 레버르트는 1959년 전범 자녀들을 최초로 만나 취재했다.

그리곤 한 잡지에 ‘아버지의 이름을 물려받은 까닭에’라는 제목으로 1년 동안 연재했다. 전범 아버지와의 관계, 나치의 범죄에 대한 생각, 그런 아버지의 자녀로 살아가야 하는 운명에 관한 것들. 기사가 나가는 동안 독일은 발칵 뒤집혔다.

41년 뒤인 2000년. 아들 슈테판 레버르트는 아버지의 원고를 읽고 아버지가 취재했던 나치 전범 자녀들을 다시 취재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들의 삶이 어떻게 변했을지.

이들 부자 저널리스트의 취재 기록을 한데 모은 것이 이 책이다. 원서는 지난해 독일에서 출간되어 또 한차례 화제와 충격을 불러일으켰다.

이 책에 따르면, 나치 자녀들의 삶은 크게 두 유형으로 구분된다. 하나는 아버지의 이데올로기를 그대로 답습해 나치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속죄와 자학의 길을 걷는 것이다.

전자의 대표적인 경우가 루돌프 헤스의 아들 뤼디거 헤스. 그는 1959년 군복무를 거부했다. “아버지를 감금한 국가를 위해선 군대에 갈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이후 그의 생각은 더욱 나치적으로 변해갔다. 독일 사회는 그에게 공격 대상, 즉 나치의 적이었다. 1960∼70년대 아프리카를 여행하면서 인종분리정책을 지지했다. 인류는 당연히 백인이 지배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나의 아버지 루돌프 헤스는 세계 평화의 순교자였다. 세상은 모두 거짓이고 히틀러와 나의 아버지만이 진실”이라고 공공연히 외치고 다녔다.

하인리히 힘믈러의 딸 구드룬 힘믈러도 비슷하다. 그는 나치 힘믈러의 딸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살아왔다. 할머니가 된 지금도 나치전범자들 돕기 모임을 만들었고, 신나치주의의 집회에도 참여하고 있다.

반면 한스 프랑크의 두 아들은 속죄와 자학의 삶을 살았다. 아버지가 교수형을 당하던 1946년, 둘째 아들 니클라스 프랑크는 초등학교 2학년생이었다. 어린 나이에 겪어야 했던 그 충격. 그는 1959년 아버지 저자인 노르베르트 레버르트를 만나 “아버지는 유죄입니다”라고 말했다.

큰아들 노르만 프랑크는 아버지의 처형 이후, 방황과 고뇌를 거듭하면서 고국을 떠나 아르헨티나의 공장, 볼리비아의 탄광과 양계장 등지에서 일하면서 조용히 살았다. 한때는 폴란드로 건너가 사죄하기도 했다. 그는 자녀도 낳지 않았다. 프랑크란 이름은 영원히 세상에서 사라져야 한다는 믿음에서였다. 여기까지가 1959년의 상황이었다.

그 이후 두 아들의 삶은 점점 더 비극적으로 변해갔다. 둘째 아들은 1980년대 충격적인 고백을 담은 책을 냈다. 제목은 ‘나의 아버지, 나치의 살인마’. 그는 여기에 ‘아버지가 처형당한 날이면 나는 아버지 사진 위에서 수음을 한다…아직도 꿈 속에서 집단수용소의 시체더미를 본다…독일은과거의 역사에서 절대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아버지는 비겁하고 부패했으며, 권력에 눈이 먼 기회주의자였다’고 기록해놓았다.

그러나 사회의 반응은 전혀 예기치 못한 것이었다. ‘어떻게 아들이 아버지를 그토록 저주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정신병 치료를 받아 보라고 권하는 사람도 있었다. 범죄자인 아버지를 비판했지만 그로 인해 또다른 사회적 비난을 받아야했던, 비극적인 삶. 역사의 희생자였다.

프랑크의 둘째 아들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은 안쓰럽다. 지나친 자기혐오에서 나온 비극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아버지를 옹호할 수도 없고 비판하기도 쉽지 않은 그들의 운명. 그것은 끔찍하다. 저자의 말대로 전범 자녀들과의 만남은 ‘소름끼치는 체험의 연속’이다.

범죄자가 아니면서도 그 자식이라는 이유만으로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의 비극적인 운명을 생생하게 그린 이 책은 소중한 역사 다큐멘터리다.

저자는 이렇게 묻는다. “만약 당신의 아버지가 나치 전범자였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것은 불행했던 과거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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