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충식]김치와 우메보시

  • 입력 2001년 2월 9일 18시 27분


‘이수현 메아리’가 일본 열도에 아직도 이어진다. 남의 위기를 보고 목숨까지 던지는 한국 청년, 그는 일본인들이 자기 ‘안’을 들여다보게 했다. 서로에게 무관심한 이웃, 강아지는 따뜻하게 품어도 사람에겐 차갑고 멀어진 세태…. 그리고 일본 사람들이 바다 건너 한국과 한국인, 한일관계를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실마리였다.

한신 대지진으로 유명한 고베의 나가타구에서도 1일 한 행사가 열렸다. ‘고향의 집’이라고 하는 노인 90명 수용 규모의 노인홈(양로원) 준공식이었다. 고베시장과 중의원의원 두명, 그리고 재일 한국인들, 한국에서 간 사회복지 관계자 등 200여명이 모인 자리였다.

‘고향 땅이 여기서 얼마나 되나…/고향에도 지금쯤 뻐꾹새 울겠네.’ 노래를 부른 것은 어린 고아 14명이었다. 목포의 공생원에서 자라는 이들의 ‘원정’합창에 사람들은 울먹였다. 노랫말의 사무친 울림에 교포들은 어쩔 수 없이 눈시울을 적셨다.

▼일본 여인의 한국고아 사랑▼

드라마보다 극적인 현실이 이런 것일까. 노래 부르는 고아들과 외롭게 죽어 가는 노인들에 얽힌 비화, 대한해협을 사이에 두고 70여년 동안 촘촘히 엮어진 영화 같은 실화, 생(生) 노(老) 병(病) 사(死)에 얽힌 기구한 역사를 들어 보았다.

68년 목포에서 한 일본 여인의 죽음을 시민장으로 치렀다. 다우치 지즈코, 한국 이름 윤학자라는 이름의, 56세에 타계한 과부. 그는 ‘고아의 어머니’로 불렸다. 일본인 관리의 딸로 태어나 1919년 7세 때부터 총독부에 부임한 아버지를 따라 한국에 와서 자랐다.

처녀가 되어 윤치호라는 목포의 ‘거지 대장’(고아들을 보살핀다는 뜻에서 붙은 별명) 청년을 만난다. 윤치호는 고아들에게 음악을 가르치기 위해 선생이 필요했다. 윤이 목포여고에 있던 일본인 영어교사에게 이 사정을 말해 지즈코가 자원봉사자로 오게 되었다.

둘은 결혼에 이르렀고 42년 아들까지 낳았다. 아들 기(基)는 고아들과 꼭 같이 자고 먹으며 자랐다. 해방이 되고 일본인에 대한 미움과 보복을 피해 지즈코는 아들만 데리고 일본 부모집으로 귀향했다. 그러나 고아들과 남편을 잊지 못해 목포로 돌아온다.

6·25전쟁이 터졌다. 원장 윤치호는 고아들의 식량을 구하러 나간다며 떠난 뒤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남편이 돌아올 날을 기다리고 기다리며 지즈코는 고아들을 돌보았다. 궁핍한 전란기에 과부로서 수십명의 고아들을 거느리는 일이란….

그렇게 간난의 세월을 딛고 68년 임종에 이를 무렵 지즈코는 한국말을 잊어갔다. 본능으로 뇌리에 박힌 일본말을 되풀이하고 김치 대신 어려서부터 입맛들인 우메보시(매실장아찌)만을 찾았다. 아들은 그 때 죽어가는 어머니에게서 일본인의 원형(原型)을 발견했다.

윤기씨는 80년대 일본에 사는 한 노인의 비극적인 사망 기사를 읽었다. 홀로 사는 재일 한국인 노인이 외롭게 죽었으나 한달 가까이 이웃이 몰랐다는 기사였다. 윤씨는 어머니 지즈코를 떠올렸다. ‘그 불쌍한 노인은 죽을 무렵 한국말을 하고 싶고 김치가 먹고 싶지 않았을까.’ 그런 비극을 막고 소박한 꿈을 채워주는 ‘노인 홈’을 지을 수는 없을까.

아사히신문에 그런 제언을 실었다. 공감하는 반응이 오고 어렵게 모금을 해 오사카 인근 사카이에 ‘고향의 집’(90명 수용)을 열게 되었다. 이어 오사카에도 작은 규모지만 오픈하고 이번엔 고베에서 준공을 보게 된 것이다.‘김치와 우메보시를 골라 먹을 수 있는, 아리랑과 엔카를 모두 부를 수 있는 노인홈’들이다.

▼'고향의 집' 더 만들 희망안고▼

고베의 시설은 총 12억엔 정도가 들었는데 고베시가 대략 절반을, 나머지는 모금으로 채웠다. 김용성 할머니(고베 거주)같은 이는 홀로 애써 벌어 모은 돈 5000만엔을 넣기도 했다. 윤씨의 희망은 이제 도쿄를 비롯한 일본 각지에 7곳쯤 더 ‘고향의 집’을 여는 것이다.

이날 행사에서 ‘고향 땅’동요를 부른 고아들은 바로 윤치호가 만든 공생원 소속. 지금은 윤기씨의 외동딸 윤록씨가 운영중이다. 아이들의 노래는 ‘미래로’라는 일본 대중가요로 끝났다.

‘발밑을 지켜보렴/이것이 네가 걸을 길/앞을 보렴/저것이 너의 미래/…/꿈은 언제나 하늘 높이 있어/이루지 못할까 두렵네/그래도 쫓아갈 거야/…미래를 향해/천천히 걸어가자’

박수가 길게 이어졌다. 두 나라의 미래를 곰곰 생각케 하는 노래에.

<김충식 논설위원 고베에서>seesche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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