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CEO열전]김성주 성주인터내셔널 사장

  • 입력 2001년 2월 8일 18시 37분


‘현금 부자’로 소문난 대성그룹 집안의 막내 딸.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유학 길에 올랐지만 외국에서 ‘몰래 결혼식’을 올리는 바람에 송금이 끊겨 빈털터리 신세가 된다. 고학으로 미국과 영국의 명문대학을 졸업한 뒤 백화점 말단직원으로 출발한 그는 몇 년뒤 자신의 이름을 딴 회사를 만들어 패션 유통업계의 실력자로 떠오른다. 97년 세계경제포럼이 21세기를 이끌어갈 차세대 지도자 100명중 한명. 늘씬한 키(1m76㎝)에 유창한 외국어 실력….

성주인터내셔널 김성주 사장(45)은 ‘공주’이기를 포기한 이력에서 알 수 있듯이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 자체가 극적이다. 자기 힘으로 사업을 일군 여성 CEO(최고경영자)가 드문 한국 의 경영계에서 성공한 여성 기업인으로 첫손 꼽히는 인물이다.

91년 경영일선에 뛰어든 그의 비즈니스 방식은 독특했다. ‘봉투’와 ‘접대’가 당연시되는 한국에서 김사장은 가진 자의 의무와 투명 경영의 경쟁력을 강조하고 다녔다.

‘별종’이라는 손가락질과 함께 “얼마나 잘 돼나 보자”는 식의 비아냥이 끊이지 않았지만 사업 안목과 수완이 탁월한 덕택에 회사는 승승장구했다. 대성그룹 김수근 명예회장은 지금도 “남자로 태어났다면 더 큰 일을 했을텐데…”라며 7남매중 막내의 튀는 개성을 아쉬워한다.

김사장은 “무엇이 되겠다고 미리부터 작정한 것은 없었는데 내면에 감춰진 재능을 하나씩 찾아내고 행동으로 옮기다보니 여기까지 왔다”며 시원스레 웃었다. 아버지가 출가외인이라는 이유로 주식 1주, 땅 한평도 주지 않았지만 그 대신 더 큰 것을 물려받았다고 설명한다. “바로 사업가의 피입니다”

성주인터내셔널은 영국 의류브랜드인 막스앤스펜서를 수입 판매하고 있고 독일 브랜드인 MCM 가방을 국내에서 제조해 수출하고 있다.

김사장이 이번엔 온라인 사업에 뛰어들었다. 국내 최대규모의 고급인력 헤드헌팅 사이트(www.hrkorea.co.kr)를 5일 오픈한데 이어 여성을 위한 전문경제사이트(www.iwllb.com)도 다음달초 개설할 예정. HR코리아는 한글과 컴퓨터, 대웅제약, 옥시, 풀무원, 참존, 액센츄어(옛 앤더슨컨설팅) 등 7개 회사가 컨소시엄을 구성해 설립했다. 34개 헤드헌팅 업체와 제휴해 질높은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다고 자랑한다.

인터넷 열풍이 거세게 부니까 김사장도 ‘급한 마음에’ 닷컴 창업대열에 뛰어든 것은 아닐까. 다소 도발적인 질문을 던지자 그는 불쑥 “여자 사장의 3대 애로사항이 뭔지 아느냐”고 되물었다.

여성 사장은 △유능한 인재를 얻는게 남자 사장보다 더 어렵고 △자금을 조달하는데 불리하며 △접대 문화에 익숙치 않아 한국적 풍토에서는 불이익을 당할 소지가 크다는게 김사장의 설명. 본인이 중소기업을 10년째 운영하면서 특히 마음에 드는 직원을 구하는데 애를 먹어 ‘사람’에 한이 맺힐 정도라고 털어놓았다.

헤드헌팅 사이트에 손을 댄 것은 불경기로 직장을 잃은 고급 전문인력에게 일할 기회를 부여하는 것 외에 자신과 같은 처지의 여성 사장, 중소기업 사장들이 인재를 구하는 길을 터주려는 취지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여성경제 사이트도 자신이 갖고 있는 경험과 노하우가 여성의 취업과 창업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에서 준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여성 CEO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느냐’고 묻자 “그렇지 않아도 사업을 시작하려는데 조언을 바란다는 이메일이 많이 온다”면서 발레리나 얘기를 꺼냈다. “발레리나가 무대에서 관객의 갈채를 받기 위해 발톱을 혹사시키면서 얼마나 많은 땀과 눈물을 흘렸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한명의 스타가 탄생하기까지 좌절하면서 중도 하차한 지망생은 또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는 “정신적인 강인함이야말로 여성CEO가 갖춰야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강조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입버릇처럼 강조하는 그는 요즘 자신이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 되돌아볼 때가 많다고 말했다. 외국에서 비싼 돈을 들여 공부한 경험을 살려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하는데 힘써야 할 사람이 국내에서의 경쟁에 매몰돼 사회 전체에 대한 기여에 소홀하지나 않은지 반성하게 된다는 것.

김사장은 “외국 여성사이트와 제휴해 한국 주부들이 외국 여성들과 채팅을 즐기는 코너를 만들고 미국 영국에 교육관련 법인을 설립하는 계획을 추진중”이라고 말했다.

김성주 사장은 누구?

― 1956년 출생 (45세)

― 75년 이화여고 졸업

― 연세대 신학과 졸업후 집안반대 무릅쓰고 유학

― 79∼85년 미국 암허스트대학, 영국 런던 정경대학, 미 국 하버드대학에서 사회학 경제학 등 공부

― 91년 자신의 이름을 딴 성주인터내셔널 설립

― 97년 세계경제포럼이 선정한 차세대 지도자 100명에 지명됨

― 2000년 미국 암허스트대학 명예박사(인문학)

― 2000년 수필집 ’나는 한국의 아름다운 왕따이고 싶다’ 출간

▽ 가장 즐거울 때 : 11살짜리 딸과 강아지와 함께 어울려 놀 때

▽ 술 담배 : 안함 (한국 남자들이 과음한 다음날 정상적으로 일할 수 있다는게 믿어지지 않음)

▽ 스트레스 해소법 : 아예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1%의 희망이 99%의 절망을 이겨낼 수 있다는 긍정 적 사고)

▽ 골프 : 안함 (딸과 놀고, 책 읽고, 일하는 데도 시간이 모자람)

<박원재기자>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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