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의료보호 환자들 "약찾아 거리로 …"

  • 입력 2001년 1월 20일 16시 43분


“처음엔 약이 있다고 하다가 처방전을 보더니 말을 바꾸더군요. 빨리 치료해야 하는데 약을 구할 수 없어 정말 답답합니다.”

본격적인 의약분업이 시행된 뒤 5개월 동안 ‘사각지대’에 놓인 의료보호 환자의 항변이다. 이들은 민족의 명절인 설이 다가왔어도 ‘떡’이 아닌 ‘약’을 찾아 거리를 헤매고 있다.

이들은 왜 처방전이 있어도 약을 구할 수 없는가.

▼처방전 보여줘도 "약없다"▼

▽조제 거부 실태〓어머니가 암으로 투병 중인 노동규씨는 최근 경기 성남시의 한 병원에서 항암제를 처방받아 인근 약국에 갔지만 약을 받지 못했다. 약사가 처음엔 약이 있다고 말했으나 노씨 어머니가 약값을 국가로부터 받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의료보호 1종 환자임을 알고는 약이 없다고 발뺌을 한 것.

최두례씨는 간질로 고생하는 시동생의 약을 구하려고 서울 강남의 병원 인근에 있는 대형약국에 들렀지만 거부당했다. 병원과 가까운 약국 4곳을 돌아다닌 최씨는 종로 5가의 대형 약국으로 발길을 돌렸지만 사정은 마찬가지.

최씨는 “2개월에 한번씩 진찰과 처방을 받는 시동생이 하루라도 약을 먹지 않으면 심한 발작증세를 보이지만 아직 약을 구하지 못했다”고 보건복지부에 항의했다.

▼공단 예산부족 지급늦어▼

▽왜 약을 받지 못할까〓의료보호 1종 환자는 진료비와 약값을 모두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내준다. 2종 환자는 1차 의료기관(의원급) 이용시 진료비 1000원, 약값 500원을 부담한다.

약국은 이들의 약값을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청구해서 받는 데 보통 6개월∼1년이 걸린다. ‘투자비’(약값)를 찾는 데 걸리는 기간이 긴 셈.

약사 정모씨는 “공단에서 아예 약값을 받지 못할 때도 많아 의료보호 환자를 기피하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약값 지급이 늦어지는 건 예산 부족 때문이다. 의료보호자(170만명)를 위한 의료지원비는 국고와 지방비를 합쳐 1조5000억원. 그러나 의료보호 환자가 크게 늘어 해마다 2300∼3000억원이 부족해 공단은 약값 지급을 최대한 미룬다.

공단이 진료비와 약값 청구가 있으면 보험료 수입으로 2∼3개월 안에 지급하고 재정이 부족하면 보험료를 인상하는 의료보험 환자와는 큰 차이가 있는 셈이다.

▽의약분업 이전이 좋았다〓의약분업 전에는 병원들이 인도적인 입장에서 의료보호 환자들을 치료하고 약을 줬다. 의사들은 진료거부시 처벌도 처벌이지만 어차피 봉사하는 셈치고 이들을 진료했던 것이다. 이들은 또 보건소에서도 약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의약분업이 실시되자 병원 등은 입원환자 야간 응급환자가 아니면 약을 줄 수 없게 됐다. 결국 이들이 약을 받을 곳은 약국밖에 없는 것이다.

약사들도 조제를 거부하면 처벌을 받지만 의료보호 환자들이 적극적으로 ‘문제 약국’을 신고하지는 않고 있다.

▼불필요한 이용도 많아▼

▽대책은 없을까〓의료보호 환자는 의료비를 본인이 부담하지 않아 의료기관이나 약국을 불필요하게 많이 이용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게 복지부 설명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같은 질병으로 하루에 3개 의료기관을 이용하는 의료보호 환자도 있다”면서 “예산을 무한정 늘릴 수 없어 의료보호 환자의 불필요한 의료기관 및 약국 이용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의료보호 환자가 “○○약국이 의료보호 환자에게 약을 지어준다”는 소문을 들으면 해당 약국으로 몰리는 것도 문제다. 이런 약국은 결국 의료보호 환자를 거부하게 돼 약국별로 의료보호 환자의 처방전을 분산시키고 약사의 조제 거부 행위를 단속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송상근기자>songm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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