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전진우/식혜

  • 입력 2001년 1월 10일 18시 33분


식혜가 단 이유를 설명하고 식혜 제작 3단계를 바꾸면 식혜가 만들어지지 않는 이유는? 엊그제 서울대 자연계 면접고사에 나온 문제란다. 언뜻 알 것 같기도 한데 막상 설명하자니 입안에서 뱅뱅 돈다. 식혜를 먹어는 봤어도 만들어봤을 리는 만무한 학생들로서는 황당한 질문 같기도 했겠다. 당황하는 모습이 눈에 선한데 안됐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다.

▷식혜를 만드는 순서를 보자. 우선 껍질째 빻은 엿기름가루를 고운 체로 거른 다음 물을 부어놓으면 2시간쯤 지나 아래의 뿌연 물과 위의 맑은 물로 분리된다. 여기서 엿기름이란 보통 생각하기 쉬운 엿으로 만든 기름이 아니라 맥아(麥芽), 즉 보리싹을 틔운 것을 말한다. 그런 다음 밥을 되게 지어 사기 항아리에 담고 엿기름의 맑은 물만을 붓는다. 4∼5시간이 지나 삭은 밥알이 동동 뜨면 조리로 건져 찬물에 헹군 뒤 다른 그릇에 담고 나머지 식혜 물을 끓인다. 마실 때는 식힌 식혜에 밥알을 띄우고 생강 유자 등을 넣어 맛과 모양을 내기도 한다.

▷식혜가 단맛을 내는 것은 엿기름에 들어있는 아밀라아제라는 효소가 밥알 속의 탄수화물을 분해시켜 당분으로 만들어 주기 때문. 밥을 오래 씹으면 단 맛이 나는 것도 사람 침 속에 들어있는 아밀라아제가 같은 작용을 해서다. 식혜를 만들 때에는 아밀라아제가 잘 작용할 수 있도록 따뜻하게 해줘야 한다(섭씨 60∼70도). 온도가 너무 낮으면 밥이 쉬기 쉽고 지나치게 높으면 아밀라아제가 활발하게 작용하지 못한다.

▷만드는 순서를 바꾸면 식혜가 안되는 이유는 뭘까? 서울대 화학부 김희준(金熙濬)교수의 설명을 들어보자. ‘모든 생명현상은 효소의 작용에 의존한다. 효소작용의 기본은 효소 단백질의 화학적 구조에 달려 있는데 계란을 반숙할 때 볼 수 있듯이 단백질 구조는 열에 의해 쉽게 바뀐다. 그러니까 식혜를 만들 때에도 엿기름의 효소가 탄수화물을 당분으로 바꾼 다음 끓여야지 만일 먼저 끓이면 효소의 구조가 바뀌어 제 기능을 잃어버리게 돼 식혜가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다.’ 자, 이제 아셨죠! 식혜에도 과학의 기본원리가 숨어 있답니다.

<전진우 논설위원> young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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