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프로야구]일본 스타 스즈키 이치로 몸값 할까?

  • 입력 2000년 12월 13일 12시 57분


월드 시리즈가 끝나고 스토브리그 시작을 알리는 블록버스터 딜은 매니 라미레스도 알렉스 로드리게스도 아니었다. 스토브리그 시작을 알리는, 팀 간의 뜨거운 경쟁을 부추긴 것은 일본 프로야구 최고의 스타 스즈키 이치로의 메이저리그 진출 선언이었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7년연속 타격왕에 오르는 등 정교한 타격을 자랑하는 이치로의 소속구단인 오릭스 블루 웨이브는 최고가 입찰을 제시한 시애틀 매리너스와 145억원이라는 엄청난 금액의 이적료 조건에 합의했고 이치로 본인은 연간 740만달러 이상의 4년계약과 옵션포함 총액 3000만달러 이상의 계약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간 800만달러에 육박하는 고액의 연봉을 받게 될 이치로는 과연 어떠한 능력을 보일 수 있을까? 이치로는 일본 프로야구에서도 정확한 타력만을 강점으로 인정받는 선수였으며 파워는 메이저리그 수준에 턱없이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시애틀구단으로서는 벌써 몇 차례 이치로를 스프링 캠프등에서 보아왔고 그것을 모를리 없다. 그럼에도 시애틀은 이적료와 계약금포함 500억원에 달하는 엄청난 돈을 써가며 이치로를 영입했고, 메이저리그 최초의 동양인 타자 탄생을 시카고 컵스보다 한발 앞서 달성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현재로선 시애틀이 이치로에게 바라는 것은 리드 오프로서의 능력이다. 빠른 발과 정확한 타격으로 마이크 카메론이 해내지 못한 것을 이치로가 해주길 원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이치로는 특별한 일이 생기지 않는 한 내년 개막전 선발 우익수로 출장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주전 우익수로 자리잡을 만큼 이치로의 수비능력 또한 수준급이며 송구능력 또한 일본 프로야구에서도 강견으로 정평이 나 있다.

하지만 시애틀의 이치로 영입은 두 가지의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첫 번째는 이적료와 계약금 등의 과도한 지출이다. 현역 최고의 리드 오프로 평가받고 있는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케니 롭튼이 올 시즌 받은 연봉의 액수는 750만달러로 이치로 보다 적다. 또한 매 시즌 40홈런 이상을 칠 수 있는 타자로 평가받고 있는 인디언스의 중심타자인 짐 토미의 연봉은 900만 달러이다.

과연 계약금 145억원과 300억원 이상되는 연봉을 지출할 만큼 이치로의 능력이 메이저리그내의 어떠한 타자보다도 뛰어날까? 필라델피아의 바비 어브레유나 토론토의 라울 몬데시 정도의 활약을 이치로가 해낼 수 있을까?

두 번째는 이치로의 포지션인 우익수 자리의 문제이다. 전통적으로 팀의 우익수는 강력한 파워를 자랑하는 타자들로 채워졌다. 뉴욕 메츠같은 팀처럼 내야가 외야보다 강력한 파워를 지닌 특이한 팀도 있긴 하지만 그런 메츠 조차도 외야 파워를 키우기 위해 선수를 물색중이다.

몬트리올의 블라디미르 게레로, 로스앤젤레스의 션 그린, 필라델피아의 바비 어브레유 등 팀의 주전 우익수들은 대부분 매 시즌 40홈런이상을 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선수들이 대부분이다. 그와 비견될 만한 선수는 비록 좌익수이긴 하지만 뛰어난 리드 오프로서의 자질을 가진 토론토의 셰논 스튜어트와 최고의 정교함을 자랑하는 토니 그윈이다. 하지만 이 두 선수중 어느 누구도 이치로의 연봉보다 많이 받는 선수는 없다.

거포 켄 그리피 주니어(신시네티)를 떠나 보내고 이젠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는 알렉스 로드리게스도 팀을 떠날 것이 기정 사실화 되어있는 시애틀이 장거리 타자의 영입보다도 확실하지 않은 리드 오프로서의 자질만 믿고 5000만달러에 달하는 거액의 돈을 쏟아부은 것은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다.

이미 노쇠의 기미를 보이는 제이 뷰너와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고 있지만 역시 나이가 부담스러운 에드가 마르티네스를 대신할 거포의 부재가 시애틀로서는 우선시 되어야 할 문제일 것이다.

하지만 이미 시애틀은 이치로와 계약을 마무리 지었고, 이젠 이치로가 그에게 쏟아부은 돈 만큼의 값어치를 해내야만 하는 무거운 짐을 떠안게 됐다.

이치로가 극복해야 할 문제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뉠 수 있다.

첫 번째는 투수와는 다른 타자의 입장에서 본 장거리 이동이다. 5일에 한번 등판하는 기존의 선발투수들과는 다르게 이치로는 엄청난 이동거리를 견뎌내야 하며 그 기간동안 효과적인 체련 안배가 필요하다. 지금처럼 호리호리한 체격으로는 메이저리그 무대에서 버텨내기 힘들다.

두 번째는 전혀 다른 투수들과의 적응이다. 메이저리그의 투수들은 이치로 단 한 사람만을 연구하면 되지만 이치로는 리그내의 모든 투수들을 연구해야 하며 결정적인 문제는 볼이 빠르다는 것이다. 메이저리그에 올라온 보통의 투수들은 일본내에서 보아온 강속구 투수들과 비견될 만큼 빠른 볼을 자랑한다.

빠른 볼을 던진다는 투수는 웬만하면 시속 155㎞이상의 구위를 자랑하고 있고 자주 구사하는 변화구의 구질 또한 다르다. 더군다나 메이저리그 투수들은 유인구를 좋아하지 않는다. 기다림에 익숙한 이치로가 기본적인 것부터 뜯어 고쳐야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마지막 세번째는 팀 메이트와의 융화다. 아나운서 출신의 아내를 선택한 것엔 영어를 잘하는 것 역시 포함되어 있어 결혼에 있어서도 메이저리그에 대한 철저한 준비를 자랑했던 이치로. 하지만 부인이 락커룸이나 벤치에 함께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또한 통역으로 팀 메이트와 코칭 스태프와의 대화를 해결하려는 안이한 정신자세로는 결코 제대로 적응할 수 없다.

그가 일본리그 최고의 선수로 '이치로 현상'을 만들어낸 인물이라는 것을 미국인 대부분은 거의 모른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만일 위에서 말한 몇 가지 문제에 이치로가 적응하지 못한다면 최고의 정확함이라는 그의 특기조차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희정 <동아닷컴 e포터> planm31@net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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