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리뷰]<루나 파파>중앙아시아 표 코믹 판타지

  • 입력 2000년 12월 6일 19시 40분


환상적이면서 다소 몽환적이기도 한 분위기를 최대한 살렸으나 일관되게 사랑을 화두로 삼은 영화다.

광활한 평원과 뿌연 흙먼지를 날리는 황톳길이 수시로 스크린을 채우는 이 영화는 서구와 아시아 문명의 통로, 문명의 손때가 덜 묻은 동양적 신비로움이 가득한 중앙아시아가 배경이다.

파미르 고원과 실크로드의 중간 지대로, 아름답고 신비스러운 카스피해의 풍경이 뒤로 펼쳐져 있지만 전통과 주술, 미신이 공존하는 이곳의 삶은 혼돈스럽기만 하다.

이런 타지키스탄의 혼돈을 배경으로 박티아르 쿠도이나자로프 감독은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허물고 가슴시린 슬픔마저도 웃음으로 승화시켜 한편의 유쾌한 판타지 코믹 어드벤처를 엮어냈다.

카스피해에 위치한 조그만 마을 파코에 자식을 끔찍이 챙기는 아버지(아토 무카메자노프)와 정신지체자인 오빠 나세르딘(모리츠 블라입트르)과 함께 살고 있는 17세소녀 말라카(슐판 카마토바)가 어느날 연극을 보러갔다가 배우를 자칭하는 남자를 만나 임신을 한다.

이를 안 아버지와 오빠가 말라카와 함께 뱃속 아이의 아버지를 찾아 나서는 기나긴 여정이 주된 스토리 라인. 우여곡절끝에 만난 한 남자와 결혼을 하게 되지만 하늘에서 떨어진 황소에 맞아 신랑과 아버지가 죽는 바람에 결혼식장은 이내 장례식장으로 변해버린다.

온 마을 사람들이 말라카를 `창녀'라고 손가락질하면서 위협을 가해오자 오빠 나세르딘은 기적을 일으키듯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그녀를 먼 곳으로 탈출시킨다.

유쾌한 판타지가 넘쳐나는 만큼 그녀의 탈출은 황당해 보이기 보다는 그저 보는이를 즐겁게 하는 동화 속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이국적인 풍광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유머와 비극을 한데 교직한 블랙코미디로,초현실적인 세계를 그리고 있는 듯 보이나 정작 판타지가 겨냥하고 있는 것은 분명 현실과 현실 속의 아름다움일 게다.

작년 도쿄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예술공헌상을, 낭트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각각 수상했으며, 올 가을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됐다. 23일 개봉.

[연합뉴스=이명조 기자] mingjo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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