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충돌! 두 문화]백기완씨가 본 핑클

  • 입력 2000년 10월 22일 19시 44분


‘핑클’ 공연을 보고 오는 길이라는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소년이 전철칸에서 나한테 자리를 양보한다. 전철 열 번을 타면 한두번쯤 있는 일이라 그렇게 고마울 수 없다. 그래서 그 고마움의 표시로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의 가장 멋진 머리카락 색깔이 머루빛 검은 머리거든. 밝음에 먹히는 색이 아니라 도리어 그 밝음 속의 어두움을 쏘는 검은 빛.”

이래 말을 했는데 자기는 그런 머리 빛은 싫고 바로 이 노랑머리가 좋단다. 얼참(순간) 나는 내 밑두리가 철렁 빠지는 것 같았다.

타고난 개성이 싫다면 그것은 엄청난 자기 상실증이요, 서양이나 미국 문화에 대한 환상적 동경에 취해 하염없이 방황하는 꼴이라. 문득 문화적 위기감을 느끼면서 그 소년이 좋아한다는 ‘핑클’을 떠올렸다.

잘 아는 바 ‘핑클’은 음반사의 의도에 따라 10대와 20대 초반의 예쁜 여성 넷으로 꾸며진 노래패다. 이 노래패가 처음으로(98년 5월) 방송에 나온 것을 본 사람들은 모두 예쁘다는 말로 혀를 찼던 것으로 기억된다.

심지어 ‘핑클’의 아름다움에 정신없이 동행을 하다가 깨어보니 꼭 실연한 기분이었다는 어느 중년의 실토는 나같은 늙은이까지 쿡쿡 찔렀다. 한번 봐보라고.

그래서 그들의 공연을 보고 나서 나 역시 고개를 끄떡였다. 그들의 미적 돌파력의 교묘성과 여성적 공격력의 대담성이다. 그러나 그러면서 긴 한숨을 거둘 수가 없었다.

우리의 전통적 미녀상이라고 하면 ‘나네’를 친다. 여기서 ‘나네’란 말 그대로 언 땅을 지고 일어서는 봄의 새싹, 그러니까 비록 가냘프지만 쌓인 가랑잎과 두엄더미까지 박차고 일어서는 거룩하고 엄숙한 생명력이다.

이에 비추어 볼 때 ‘핑클’ 구성원의 미인상은 어떤 것일까.

혹시 성적 자극, 관능적 충동, 남성의 호기심을 포로로 꾸민 미인상은 아닐까, 아니 일본에서 여과된 미국 미인의 외모를 닮으려한 것은 아닐까. 그렇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쑤셔서 그런지 자꾸만 한숨이 나온다.

그 다음 나 같은 사람한테 노래패 ‘핑클’의 노래는 또 어떻게 들려올까.

우리네 소리내기 전통에 따를 것이면 박연 폭포에 맞서 소리를 얻은 사람이 으스대며 내려올 것이면 밭에서 일을 하던 농부들이 삐쭉인다.

“넌 인석아, 소리는 얻었으되 네 소리엔 쇳소리가 빠졌어 인석아….”

쇳소리란 무엇일까. 노동의 강도를 달구고 노동의 결과에 대한 희망이 아로새겨진 소리다.

그런데 한번 음반을 냈다고 하면 수십 만장이 미리 팔리는 ‘핑클’의 노래에 그런 쇳소리가 있는가. 대개는 미국과 영국 팝 음악의 한 갈래인 리듬앤블루스(R&B), 발라드, 테크노 음악 따위들을 일본 투로 부르고 있는 것 같고 그나마 노래 이름이 ‘디어 맨(dear man)’이 아니면 ‘나우(now)’ 따위의 영어로 되어 있어 도통 그 지향을 알 수가 없고 그 속에 삶의 정서 내지 쇳소리가 있는 것 같지가 않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세 번째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핑클’의 춤이다. 기왕 춤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 우리 춤의 기본은 무엇일까? ‘맴돌이’다.

가령 연자방앗간에서 방아를 찧던 처녀가 아무리 찧어도 찧어도 낱알은 죄 주인한테 돌아가는 것을 알기에 서있는 두발까지 천척심곡으로 빠져드는 듯하다.

이때 그 처녀는 느닷없이 방앗간 기둥을 붙잡고 맴을 쳐 두발을 세우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는 그 두발을 중심으로 온몸을 휘저어 자기 염원을 빚어내는 것을 ‘맴돌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핑클’의 춤에 그런 ‘맴돌이’가 있는가.

어느 날 테크노 춤을 보았을 때다. 그것은 설자리마저 빼앗긴 허공에서 그렇게 허공으로 내몬 억압에 도전하는 몸짓이기 전에 도리어 그 허공 속에서 스스로 흔들며 자기 자신을 파편화시키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오늘날 우리 청소년들이 사랑하는 ‘핑클’의 춤은 어떤 것일까. 자꾸만 서글퍼진다.

생각하건대 자본주의 문명은 인간에게 두 가지 엄격한 규제를 윽박지르고 있다. 하나는 인간을 역사 창조의 주역이 아니라 단순한 노동의 단위로 규격화하는 것이요, 또 하나는 사회적 존재양식보다도 소비의 단위로 내 모는 것이다.

여기서 필연적으로 제기되는 거짓이 있다. 나는 내 멋으로 산다는 것이요, 내가 손해 보는 것도 싫다는 개인주의다. 그 개인주의로 갈기갈기 파편화된 인간은 또 거대한 자본의 재생산구조에 통합되어 또다시 노동의 단위, 소비의 단위로 인간의 알기(주체성)를 끊임없이 박탈당한다.

그 폐허가 바로 세계주의요, 그것의 문화적 표현인 상업주의 문화가 몰고 오는 것이 있다. 자아와 사회 의식의 상실, 역사 의식의 상실, 그것을 정서적으로 압박하는 것이다.

앞서 말한 그 노랑머리 소년의 자기상실증, 서양에 대한 환상적 동경이 그것이나니 ‘핑클’이여 그 발랄, 그 청순, 그 총명으로 하여 이런 상업주의 문화의 도구로 전락되는 것을 내버려 둘 수는 없지 않는가.

상업주의 문화는 딱 한가지 죄악이 있으니 말이다. 환호만 남기고 감격을 죽이는 폭거다.

그러니 ‘핑클’이여 환호만 아우성인 인기, 그 상품성에 주저앉질 말고 감격을 창출하는 진짜 예술가로 거듭나라고 당부해 본다.

백기완(통일문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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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핑클의 말

백기완 선생님이 우리 노래를 듣고 춤을 보셨다고 해서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선생님이 누구인지 몰라 주위에 물어봤더니 ‘외곬수 재야 운동가’라고 해서요.

그런데 우리는 이번에 성적 매력보다 ‘우아한 여성’을 강조하려 했는데 팬들은 오히려 섹시한 느낌으로만 보는 것 같아요. 지난해말 공연을 위해 북한을 다녀온 뒤부터 중년 아저씨 팬이 많이 생겼어요. 북한사람과 판문점에서 울거나 방송에서 방북 소감을 말하는 모습이 맘에 드신 것 같습니다.

우리는 전통적 미인상은 아닙니다. (성)유리를 빼면 나머지는 그다지 미인이 아니거든요. 사실 요즘은 젊은 여성들한테 전통적 미인이라고 하면 달가와하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말씀하신 내면적인 아름다움은 귀담아 듣겠습니다.

노래와 춤에 삶이 깃들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문제는 우리가 어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직 철이 없는 우리가 삶을 억지로 담아내려 한다면 역효과가 날 수도 있습니다. 연륜이 쌓이면 자연스럽게 우리를 표현해보겠습니다. 예술성에 대한 말씀도 같은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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