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윤득헌/賞狀 거품 시대

  • 입력 2000년 10월 19일 18시 47분


얼마 전 타계한 소설가 황순원(黃順元)선생은 세속적 문단활동이나 영예를 거부한 채 고고한 삶을 살았다. 선생은 소설로 예술원상, 아시아자유문학상, 3·1문화상, 한국문학상을 수상했지만 자신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긴 상은 거부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수여하려 하자 ‘소설가로 충분하다’고 사양했고, 1996년에는 정부의 은관문화훈장도 거부했다. 사실 수상자와 어울리지 않는 상이라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원래 상에는 뒷말이 많은 법이다. 주는 쪽이나 받는 쪽이 모두 흔쾌한 상이라면 좋을 터인데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는 것이다. 최근 이탈리아의 한 피아노 콩쿠르에서 한국의 젊은이가 1, 2차 예선에서 2위와 1위를 했으나 끝내 5위에 그쳤다는 보도가 있었다. 3차 예선부터 편파심사가 작용한 결과라고 했다. 또 미술대전에서 돈 거래를 통한 입선 추문도 터져 나왔고, 지난해에는 대종상의 일부 상이 야합에 가까운 흥정으로 이뤄졌다는 비판도 있었다. 상을 본래의 뜻과는 달리 다른 목적을 겨냥한 수단으로 삼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고등학교에서도 그런 일이 만연하고 있는 것 같다. 대학 입시에 학교장 추천제와 특기 등을 우대하는 특별전형이 확대되면서 나타난 고교의 ‘상장 거품’ 현상이다. 대학 전형에서 상장이 평가의 대상이 됨에 따라 고교가 자체적으로 수많은 상을 만들어 마구 수여한다는 것이다. 학업성적과 관련한 상 이외에 질서상, 효행상, 봉사상, 절약상, 모범상, 칭찬상 등을 수여함으로써 학생 한 명이 평균 1.2개의 상을 받았고 어떤 학생은 한해 17개의 상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상을 남발하는 고교의 입장을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상장 부풀리기’는 결국 상의 의미만 퇴색시키고 말 것이다. 대학 측에서는 벌써 수상 실적은 변별력을 잃은 상태로 보고 있다고 한다. 초중고등학교에서의 상은 학생들을 건전하고 건강한 생활로 이끌기 위한 격려의 방식이 되어야 한다. 예전 초중고등학교에서는 학년이 끝날 때면 개근상을 우등상 이상으로 평가하기도 했었다. 학교가 상의 권위와 가치 훼손에 앞장서서야 되겠는가.

<윤득헌논설위원>dhy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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