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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0년 10월 16일 18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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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창 박동진 옹이 방송광고에서 하신 말씀이지만 가슴에 다가오는 한 마디다. 다른 사람이 했다면 몰라도 그 어른의 마음은 그렇게라도 해서 우리 것에 대한 소중함을 일깨우려 하셨을 것이다.
1960년대 초만 해도 우리 것을 이야기하면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라면서 고루한 사람, 진취성이 없는 사람, 골동품으로 틀어박혀 있어야 할 사람, 바깥 세상을 모르는 무식한 사람이라고 매도 당하곤 했다. 그 때 그들은 ‘세계화’라고 하지 않고 꼭 ‘코스모폴리탄’이라는 용어를 썼다. 그리고 ‘코스모폴리탄’이라는 용어를 쓰는 사람들은 국가를 초월한 시야가 넓은 사고와 외국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지닌 앞서가는 사람이라고 자부했다. 그들이 하는 일은 옳은 일이고 그렇게 해야만 국제 사회에서 발전할 수 있다고 했다.
우리 것이라는 찌들고 냄새나는 헌 옷을 과감히 벗고 코스모폴리탄적인 사고와 지식의 참신한 옷으로 갈아입어야 한다고 했다.
물론 그들 논리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들은 우리 것을 너무 업신여겨 줏대 없이 외국 것에만 치우쳐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줏대 없이 한쪽으로만 치우친다는 것은 중심이 흐트러졌다는 이야기다. 중심이 흐트러져서는 올바른 길로 나갈 수가 없다. 우리 것만 주장해도 안 되지만 코스코폴리탄만 신봉해도 안 될 것이다. 우리 것도 입으로만 주장할 일이 아니라 우리 것을 올바르게 알아 우리의 줏대를 세워야 하는 것이고 외국 것도 깊이 알아야 중심을 잡을 수 있다.
코스모폴리탄 다음에 ‘국제적’이라는 말이 또 한참 나돌았다. 그 때는 그래도 소수지만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국제적인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고, 미흡하지만 우리 것을 알고 외국 것을 과감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얼마 전부터는 ‘세계화’를 부르짖고 있다. 처음에는 세계화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얼른 짐작이 가지 않았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문화 경제 정보 등 모든 분야에서 무한 경쟁을 하자는 이야기 같다.
선진국들은 자기문화를 끔찍하게 지켰을 뿐 아니라 남의 무형 유형의 문화까지도 가져다 자기 문화 발전에 힘을 보태고 또 그것을 자랑하고 즐기면서 풍요로운 삶을 구가했다. 선진국은 이제 한 술 더 떠서 군사 경제 정보 산업 과학기술 지적소유권 등 모든 것을 선점하고 앞으로 자기네 이익과 주장이 될 수 있는 모든 것을 치밀하게 계산해 놓고는 무한 경쟁을 하자는 얘기다. 중진국 후진국은 이제까지 자승자박한 것도 있지만 선진국의 침략과 약탈 폭력 속박 등으로 아사(餓死) 직전에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무한 경쟁을 하자는 것은 병들어 팔 다리조차 제대로 못쓰는 어린아이와 건강하고 힘센 어른이 조건 없이 맞싸우자는 것과 마찬가지다. 싸워서 숨통을 끊지는 않을 것이다. 조금 봐주기도 하고 도와주는 척도 하면서 여러 가지로 구스르고 이용하면서 자기네의 계산대로 끌고 갈 것이다. 중 후진국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미래의 설계는 물론이고 한치 앞도 바라볼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상황을 확실하게 타개할 수 있는 아무런 방안도 세울 수가 없다. 방안을 세우고 시행하면 모두가 빗나가고 만다.
이 어려운 상황은 누구도 타개하기 어렵다. 다만 한 가지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줏대를 세우고 중심을 잡아 나가는 일이다. 남도 알고 우리도 알면, 우리 것이 토양이 되고 뿌리가 되고 남의 것이 퇴비가 되고 햇빛이 되어 나무가 성장하고 풍성한 열매를 맺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 것을 알아서 그것이 기본이 되고 남의 것을 잘 이해 소화하여 우리 것과 남의 것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제품을 만들어 팔고자 한다면 남이 안 가진 장점과 개성과 특징이 있어야 한다. 성능도 물론 뛰어나야 하지만 그 특징과 개성이 아름다워야 한다.
이제까지는 우리 것이 생성됐던 근본인 ‘자연’과 우리가 만들어 냈던 ‘우리 것’을 지키고 이해하는 데 너무나 소홀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세계화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우리의 자연을 보존하고 우리 것을 지키고 이해하는데서부터 모든 것이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세계화로 세계가 하나가 되는 것은 아니다. 세계화의 무한경쟁 속에서도 각 국과 각 국 내의 수많은 단체와 개체가 자기의 장점과 개성과 특징을 살려내야 한다. 그런 무한경쟁 속에서 조화와 균형이 이뤄지고 서로 남의 장점과 개성과 특징을 존중하고 협력과 이해가 이뤄질 때만이 건전한 세계화가 가능할 것이다.
정양모(경기대 석좌교수·전국립중앙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