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 현장21]'쾌도난담 파문' 김훈의 "러브호텔을 말한다"

  • 입력 2000년 10월 12일 20시 51분


'러브호텔을 지탄하는 사람은 누군가'

아니 이게 무슨 말?. 러브호텔에 출입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논리적으로 옳단 말인가.

그러나 예단은 금물.

'불경'스런 말은 계속된다. "러브호텔의 불륜은 일부일처제가 인간에게 가한 압박의 산물이다." 일부일처제를 깨라? 아니면 일부일처제가 있는 한 러브호텔의 불륜은 용인돼야 한다? 머리나쁜 사람은 헛갈리기만 한다.

"러브호텔 주차장의 자동차 번호판 가리개용 비닐커튼은 평화공존을 위한 위선의 장치다" 이건 웬 '러브호텔 철학'? 알쏭달쏭. 더욱 복잡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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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생긴 중년신사의 입에서 나온, 느릿하고 진지하게 내뱉는 '말폭탄'. 그는 분명 '간이 배 밖으로 나왔다'. 그렇지 않고선 온나라가 마치 70년대 멸공궐기대회처럼 '러브호텔 결사 반대'를 외치고 있는 이 시점에, 그것도 '이 시대의 지식인'이라고 회자되는 사람이 그렇게 '심한 말'을?

그가 다시 '소신'을 내뿜었다. 얼마전 한 시사주간지의 '쾌도난담'이라는 코너에 등장해 진심을 밝혔다가 '동시대인 전체의 이름으로 칼질'을 당했던 그 사람. 이번엔 '러브호텔과 위선의 장치'라는 다소 자극적인 제목으로.

그 사람이 누구지? 시사저널 전 편집국장 김훈. 언제 그런 말을 했냐고? 지난 시월 초엿세. 어디서? 동아닷컴 세미나실에서. 무슨 자리서? 신입기자 간담회에서.

그는 진지하고 치열했다. 미리 원고를 준비하는 꼼꼼함을 보였다. 때론 담배를 피우며 때론 화이트보드에 그림까지 그려가며 천천히 그는 생각의 편린을 드러냈다.

그는 이번 강연을 위해 '트로이 문명이나 바빌로니아의 유적을 관찰하는 고고학자의 마음으로' 러브호텔을 3번이나 탐험했다고 털어놨다.

깊은 생각과 정제된 언어를 구사하는 김훈. 그의 강연은 마치 글을 쓰듯 고뇌하며 인간의 본질 속으로 한발짝 한발짝 내 딛었다. 한참을 돌아돌아 가던 그는 이윽고 본 주제인 '러브호텔'에 대해 운을 띄웠다.

"저는 일산 신도시에 삽니다. 러브호텔의 풍경은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풍경이고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아주 일상적인 것이죠. 모든 언론인 종교인 사상가 지도자들이 러브호텔의 문제를 선과 악의 대결로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선과 악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본질에 관한 문제죠. 물론 선과 악의 대결이라는 구조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인간의 본질에 관련된 위선들이 빚어내는 복잡한 인류사적 사태입니다"

그는 이어 "일산의 러브호텔과 인간의 선악의 풍경을 말하겠다"고 말하고 칠판에 러브호텔 지형도와 마을 지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러브호텔이란 업종은 없다.숙박업소로 허가해줬다.그런데 그 숙박업소에 불륜의 남녀가 드나든다. 그것이 매춘, 미성년자 약취 유인이 아니고 강간이 아닌 한 구청이나 경찰이 간여할 수 없게 돼있다. 다만 학교가 있으니까, 학생들 보기에 민망하니까, 200미터 떨어져 지어라 라고 구청은 지시했다."

이어지는 그의 표현이 자못 비장하다. "저는 정말 트로이문명이나 바빌로니아의 유적을 관찰하는 고고학자의 마음으로 러브호텔을 분석해 봤습니다." 그리곤 그가 탐험한 '러브호텔'의 구조를 상세하게 그리기 시작했다.

"러브호텔이 있죠. 앞은 프론트 입구인데 '나이아가라' '파라다이스' 등 간판이 붙어있습니다. 차들은 메인 프론트로는 들어오지 않게 돼 있지요. 뒷골목으로만 들어오게 돼 있죠. 남녀는 파킹한 뒤 뒷문으로 들어옵니다. 남자는 메인프론트에서 체킹하고 여자는 대기실서 기다리죠. 채킹이 끝나면 남자는 여자를 대기실서 데리고 객실로 갑니다. 여자 대기실은 칸막이가 쳐져있어 서로를 바라 볼 수 없게 돼 있죠. 손님이 너무 많아서 여자 대기실이 꽉 찹니다. 그러면 대기번호를 부여해 언제 방이 난다고 미리 알려주지요. 러브호텔 주차장에는 비닐커튼이 있죠. 차가 들어오면 비닐커튼이 내리져 차의 번호가 외부에 노출되지 않도록 했지요."

돈 털러간 밤손님보다 더 치밀하다. 놀라워라 노신사의 취재력!

잠시 머뭇거린다. 비닐커튼. 그의 '비닐커튼의 철학'이 나왔다.

"비닐커튼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지요. 비닐커튼이 없으면 난리가 나지요.이것이 위선의 장치죠. 교회나 행정 경찰의 힘으로도 제거할 수 없는 것이죠. 이 커튼을 제거해 버리면 평화는 깨지고 말지요. 러브호텔과 마을의 평화로운 공존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비닐커튼 밖에 없지요. 이런 공존을 위해 비닐커튼이 존재하는 겁니다."

정적을 깨는 그의 육성이 이어졌다. 말하자면 김훈의 '섹스론'쯤 된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가. 이것은 이 말을 해서 또 도덕적인 지탄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저의 진심이니까 온건하게 이야기 하겠다. 지금 러브호텔의 불륜 치정이 사회에 창궐하고 있는 것을 도덕적 타락이라고 말하면 할 말이 없죠. 그러나 이것은 일부일처제가 인간에게 가하는 부자유와 압박이 더 이상 인류가 감당할 수 없는 사태로 나아간 것입니다. 인류 문명이 일부일처제를 부인한다면 모든 문명의 근간이 무너지죠. 성적 도덕의 문제가 여기서 발생하는 겁니다. 우리 사회의 불륜은 결혼하지 않는 사람들의 모든 성관계죠. 결혼한 사람의 성적관계는 '윤리'죠. 결혼은 구청에 혼인신고(등록)를 하는 것이죠. 구청에 등록은 한 것은 윤리고 그렇지 않은 것은 불륜이죠. 이것은 인간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입니다. 가령 남녀사이에 순결한 섹스라는 것은 영혼과 육신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것으로 알고 있죠. 그러나 구청에 등록하고 하는 합법적인 섹스안에서도 인간의 섹스가 영혼과 육신의 완벽한 조화에 도달하기에는 참으로 어렵지요. 왜냐하면 섹스라는 것은 동물적인 것이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오늘밤도 러브호텔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섹스행위를 구청에 등록된 사랑의 이름으로 지탄할 만한 논리적 도덕적 근거가 있는 것이냐에 대한 반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러브호텔에 가라고 장려하는 것은 아닙니다. 러브호텔이 옳으냐 그르냐, 선이냐 악이냐를 말하는 것이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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