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10만株 가진 사외이사

  • 입력 2000년 9월 29일 18시 56분


김대중 정부 출범후 재벌개혁 차원에서 도입된 사외이사 제도를 일부 기업들이 편법으로 운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사외이사의 자격과 선임절차를 둘러싼 논란이 그치지 않고 있다. 이 제도의 취지는 독립적 사외인사를 이사회에 참여시켜 대주주의 전횡을 감시하고 자문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뜻에서 크게 벗어난 사례들이 최근 잇따라 불거져 나와 사외이사 제도의 보완 및 개선이 요구되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국회에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상장회사 사외이사 중 200명이 회사주식을 보유하고 있고 10만주 이상 가진 사외이사도 27명에 이른다. 심지어 회사 주식을 160여만주(지분 4.6%)나 보유한 주주도 사외이사로 선임됐다.

회사 주식을 대량으로 갖고 있는 주주를 사외이사로 임명하는 것은 사외이사의 본래 의미를 퇴색시키는 것이다. 사외이사가 실권주를 받는 것도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 마당에 이미 주식을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는 상태에서 사외이사로 선임되거나 선임된 후에 대량의 주식을 사들이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이러한 주주 사외이사가 대주주나 경영진을 견제하는 기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회사주식을 많이 가진 사외이사는 미공개 경영정보를 이용해 주식을 거래하려는 유혹에 빠질 수도 있다.

사외이사에게 요구되는 자격은 대주주를 견제 감시하기 위한 독립성과 경영전략을 조언하기 위한 전문성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사외이사를 대주주와 경영진이 선임하고 주주총회의 승인을 받는 현행 제도 아래서는 독립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런 제도의 허점 때문에 대주주와 경영진은 입맛에 맞는 인사를 고르게 된다.

때로는 견제감시 기능보다는 로비스트로서의 활용가치가 높은 사람을 사외이사로 임명하는 사례도 있다. IMT―2000 관련 정책을 결정하는 정보통신정책 심의위원들이 통신사업체의 사외이사를 겸직하고 있는 것도 그런 오해를 받을 만하다. 정보통신부도 잘못이지만 당사자들의 양식도 문제다.

사외이사를 하기 위해 기업에 청탁을 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사외이사가 명망가들의 부수입원으로 전락돼서는 곤란하다.

사외이사를 독립적으로 선출할 수 있는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 내년부터 자산규모 2조원 이상의 상장기업은 전체 이사진의 50%를 사외이사로 채워야 한다. 이중에 한명이라도 소액주주를 대표하는 사외이사가 들어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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