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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0년 9월 29일 18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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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립선암을 앓아온 그는 올해 초 폐렴으로 입원, 끝내 기력을 회복하지 못했다.
그는 1968년 48세에 총리에 올랐다. 두 번에 걸쳐 15년간 총리로 재직하는 동안 독특한 개성과 막강한 지도력을 보여주어 지난해 캐나다 언론인들이 선정한 ‘20세기 캐나다의 뉴스 메이커’로 뽑혔다.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은 애도를 표하면서 “그는 캐나다에 역동적인 신세기를 열었다”고 평했다.
퀘백주 몬트리올의 부유한 가정 출신인 그는 모교인 몬트리올대 헌법학 교수를 거쳐 65년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정계에 나갔다. 법무장관 때 낙태권과 이혼권을 인정하는 개혁정책을 추진했으며 68년 총리가 됐다. 79년 총선에 져 물러났다가 9개월 만에 재집권에 성공했다.
재임 중 캐나다 의회를 영국에서 독립시키고 프랑스어를 영어와 함께 공용어로 채택했으며 강력한 인권보장법을 제정했다. 그는 캐나다 전체의 이익을 강조하며 퀘벡주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분리에 반대해 고향에서는 인심을 잃었지만 전국적으로 폭넓은 지지를 얻었다. 임금억제 정책으로 인기가 떨어지자 84년 정권을 넘겨주었다.
51세까지 독신으로 지내다 22세의 제자 마거릿 싱클레어(22)와 결혼, 세 자녀를 두었다. 6년 뒤 77년 별거에 들어갔으며 나중에 이혼했다.
가수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배우 마고 키더 등과의 염문을 뿌리며 자주 화제가 됐던 자유분방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윤양섭기자>laila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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