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전진우칼럼]'동교동당이 아니다'

  • 입력 2000년 9월 25일 18시 37분


‘DJ가 동교동을 떠났어도 동교동계는 있고 YS는 상도동으로 돌아왔어도 상도동계는 없다.’ 하기야 한 분은 현직 대통령이고 다른 한 분은 전직 대통령이니 당연하지 않느냐고 하면 그만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단순한 명제에는 양김(兩金)의 서로 다른 리더십 등 흥미로운 함의가 내포되어 있다.

계파의 이름이 상징하듯이 동교동계 상도동계 모두 그 본질적 속성은 ‘가신(家臣)’이다. 이들 계파의 대다수가 ‘주군(主君)’의 비서 출신이란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하나 YS의 상도동계가 느슨한 횡적(橫的) 관계라면 DJ의 동교동계는 빡빡한 종적(縱的) 관계다. 횡적 관계는 수평적 분업이 가능하나 그만큼 결속력이 낮다.

YS가 청와대에 입성한 뒤 상도동계의 횡적 관계는 사실상 해체됐다. 다수는 여전히 ‘김현철(金賢哲) 라인’에 속했으나 일부는 반기를 들거나 밀려났다. 그에 반해 DJ의 동교동계는 집권 후에도 종적 관계를 유지했다. 주군에서 좌장으로 이어지는 수직적 구조는 그들에게 각개약진을 허용치 않는 대신 ‘권력실세’를 담보했다. 그것은 DJ 리더십의 전형이자 동교동계의 태생적 한계이기도 하다.

그런 동교동계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기왕에도 주류와 비주류간 갈등과 반목이 있어왔다고는 하지만 모든 힘의 원천이 주군인 DJ에게 있는 동교동계에서 그 정도는 주군의 한마디면 언제라도 탕평되는 ‘찻잔 속 태풍’으로 비쳐졌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좌장인 권노갑(權魯甲)최고위원과 그 바로 아래 서열이라 할 김옥두(金玉斗)사무총장이 한사코 감쌌지만 대출외압의혹 당사자인 박지원(朴智元)문화관광부장관을 지키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서영훈(徐英勳)대표는 “민주당이 동교동당이냐”며 노골적으로 힐난하고 나섰고, 당내에서는 “지금은 그들(동교동계)이 전면에 나설수록 당에는 마이너스가 되는 상황” 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온다. 당직개편설의 타깃이 김사무총장이라는 것은 이미 뉴스가 아니다.

‘정권창출의 일등공신’이라는 동교동계의 처지가 어쩌다가 이 모양이 된 것일까.

지난 주말 여의도에서 만난 한 동교동계 인사는 “동교동계가 매너리즘에 빠진 채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고 자탄(自歎)했다. 과거 DJ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을 때의 열정에 비해 지금은 어느새 권력에 안주한 탓인지 일을 끌어나가는 추동력을 잃고 있다는 것이다.

“목표도 불투명합니다. 정권재창출을 한다면 과연 누구를 내세울 것인가. 특정인사로 좁혀보아도 그가 ‘확실한 카드’일지, 아닐지 가닥이 잘 잡히지 않아요. 그런 가운데 결속력은 느슨해지고 서로간에 흠만 크게 보이는 형국이 된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는 동교동계의 역할은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DJ가 떠나는 날 함께 떠난다’는 동교동계의 옛 열정이라면 DJ를 반드시 역사에 남는 훌륭한 대통령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동교동계를 위해서도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다. 다만 동교동계가 그 일을 자임(自任)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러기에는 무엇보다 동교동계의 자생력이 떨어진다는 것이 당 내외의 일반적인 평가다. 그들은 주군의 심기를 살피고 지시를 이행하는 데 익숙할 뿐 스스로 무엇을 만들어내고 이끌어가는 훈련은 제대로 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는 생산적이고 역동적인 정치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최근 보이는 집권여당의 무기력이 동교동계의 그같은 태생적 한계와 무관치 않다는 지적은 그래서 나온다.

그렇다면 동교동계는 이제 그들의 역할을 넘겨야 하지 않겠는가. 그들이 주군을 위해 흘린 오랜 세월의 ‘피와 땀과 눈물’은 주군이 대통령이 된 것으로 보상받았다고 봐야 한다. 주군을 ‘역사에 남는 훌륭한 대통령’으로 만드는 일까지 책임질 필요는 없다. 더구나 당내에서조차 그것이 과욕이라고 비판하는 상황이라면 겸허히 자신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동교동계 문제는 결국 주군인 DJ만이 풀 수 있다는 것은 천하가 아는 사실이다. 벌써부터 레임덕을 우려해 충성도에 집착해서는 안된다. ‘애썼는데 불쌍하다’는 식의 온정주의도 경계해야 한다. 김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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