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안이한 판단'과 암환자

  • 입력 2000년 9월 22일 18시 58분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최근 한 신문과의 회견에서 넉달째 파행을 거듭하고 있는 의약분업문제에 대해 “조금 안이한 판단을 한 것이 아닌가 반성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약의 오남용을 막는다는 의약분업의 명분에 가려 새로운 제도의 현실적합성을 신중하게 검토하지 못했다는 것을 뒤늦게나마 시인한 것이다.

의약분업은 국민총생산액 중 의료비 부담 규모를 얼마만큼 확대할 수 있을지, 그를 통해 현재의 왜곡된 의료체계를 어느 수준에서 바로 잡을 수 있을지 등 의료개혁 과제 및 의료 현실에 대한 신중한 검토가 있은 후에 추진되어야 할 과제였다.

그러나 정부는 의약분업은 곧 의료개혁이란 교과서적 등식에 매달려 분업을 다그쳤고 그 결과 의료계의 극한투쟁과 국민의 고통을 불러온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한마디로 위 아래 단추를 바꿔 낀 ‘준비 안된 안이한 정책’으로 혼란을 초래한 셈이다.

국민적 고통은 ‘수술도 못받고 죽을 수는 없다’는 암환자와 그 가족의 절규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의사들의 폐업 및 파업으로 제때 치료도, 수술도 받지 못한 채 죽어가는 암환자와 그 가족에게 의약분업의 명분이나 의사들의 ‘의권 쟁취’가 무슨 소용이겠는가. 이유가 어떻고 주장의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정부는 국민의 건강권 보호를 방기한 것이고 의료계는 의사로서 무엇보다 소중히 여겨야 할 환자의 생명을 외면한 것이다.

대통령까지 인정한 이상 정부는 우선 ‘안이한 판단’이 빚은 사회적 혼란과 국민적 고통에 대해 보다 분명하게 사과하고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의료계 또한 아무리 ‘제대로 된 의약분업’을 위한 투쟁이라지만 암환자마저 외면해서야 그 어떤 공감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당장 특별진료단이라도 구성해 암환자를 보살펴야 한다.

다행히 의대교수들이 어제부터 진료에 복귀했다. 구속자 석방과 수배자 해제라는 전제조건을 내걸어왔던 전공의협의회도 완강한 자세에서 한발짝 물러섰다고 한다. 새로운 의(醫)―정(政)대화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를 기대한다.

다만 정부가 끝내 의료계를 설득해낼 자신과 대책이 없다면 요즘 정치권 일부에서 거론하는 임의분업과 일시 유보안도 검토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 물론 그러기에는 정치 사회적으로 큰 부담과 또다른 후유증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국민을 계속 고통스럽게 하는 것 이상의 후유증은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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