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월드]롤 플레잉 게임의 고전 '드래곤퀘스트1'

  • 입력 2000년 9월 21일 19시 10분


세상은 복잡하다. 지금도 충분히 복잡한데 내일은 더 복잡해질 게 뻔하다. 게임도 복잡해진다. 게임 하면서 따져야 할 게 나날이 늘어난다. 한 번의 잘못된 선택으로 피눈물을 흘리며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건 게이머들에게 흔한 일이다.

‘드래곤퀘스트1’이 나온 건 86년. 지금보다 많은 것이 단순했던 시절이다. 그래서인지 게임은 줄거리부터 단순 명쾌하다. 단지 용사의 피를 이었다는 이유만으로 다짜고짜 왕의 부름을 받아 세상을 구해야 한다. 그렇게 여행은 시작되고 들르는 마을마다 해야 할 일이 있다. 납치된 공주를 구해주거나 다리를 가로막고 있는 괴물을 물리치지 않으면 다음 마을로 갈 수 없다. ‘드래곤퀘스트1’에는 체계적인 세계관, 심오한 철학, 개성있는 캐릭터 등 롤플레잉게임(RPG)이라면 마땅히 갖춰야 할 미덕이 없다.

그러나 이 게임은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시리즈를 통털어 2500만개나 팔아 일본의 국민 RPG라고까지 불릴 정도다. 세월이 흘렀지만 ‘드래곤퀘스트’의 인기는 여전하다. 세상이 바뀌어서 그런지 게임 시스템이 훨씬 복잡해졌지만 시키는 대로 따르지 않으면 계속 진행할 수 없는 ‘단선진행’은 여전하다. 이른바 ‘자유도’가 떨어진다는 이유만으로도 수준 낮은 게임 취급을 받는 세상이 되었지만 최근 나온 ‘드래곤퀘스트7’은 예외 취급을 받고 있다.

나온 지 그렇게 오래되었는데도 ‘드래곤퀘스트1’은 지금 해도 특유의 재미가 있다. 깊이있는 줄거리나 다양한 선택의 자유는 없다. 하지만 진지함 대신 단순한 즐거움이 있다. 시키는 대로 순순이 따르면서 세계와 공주가 무사히 구원받는 걸 느긋하게 즐긴다. 단순하고 편안해서 아름다운 세상이다.

게다가 주인공을 레벨 99까지 끈기있게 키우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다. 이른바 ‘레벨 올리기’ 게임은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드래곤퀘스트1’ 같은 게임은 없다. 긴박감이라고는 전혀 없는 전투를 수백, 수천번 반복하다보면 게임의 즐거움이 레벨 숫자 올리기로 순수하게 환원된다. 단순한 줄거리와 곁가지 없는 일직선 진행. 이에 걸맞게 주인공은 쾌활하고 단순한 녀석이고 음악은 소박하고 경쾌하다.

이런 게임이 게임의 미래가 아니라는 건 분명하다. 주어진 대로 움직이는 게임의 시대는 끝났다. 게이머가 게임에 적극적으로 영향을 주는 시대가 올 날이 머지 않았다. 하지만 새 천년에 나온 ‘드래곤퀘스트7’은 일본에서 발매 일주일만에 320만개가 팔렸다. 그게 단순히 전작의 명성 때문인지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다른 이유가 있는지 아직은 판단할 수 없다.

박상우 (게임평론가) sugulman@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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