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보의 옛날 신문 읽기]나체질주자 수사본부

  • 입력 2000년 9월 9일 22시 28분


잉글랜드 축구팬 두명이 나체로 거리를 달리고 있다.
잉글랜드 축구팬 두명이 나체로 거리를 달리고 있다.
오늘은 스트리킹에 관한 기사 세 편을 소개합니다. 모두 경향신문에 실렸던 겁니다.

우리나라에서 15일 하루동안 3건의 스트리킹이 발생, 사회의 새 두통거리로 등장하고있다.

○…이날 하오 6시반쯤 경남 충무시 부전동209 전명길씨(27·구두닦이)가 번화가인 서호동 충무극장 앞에서 옷을 벗어던지고 시가지를 9백m 뛰어 통영여고 운동장에 뛰어들었다.

때마침 수업을 끝내고 운동장에 나섰던 3백여명의 여학생들은 전씨의 나체출현에 놀라…(하략)

○…하오 1시20분쯤 서울 용산구 한남동 한남펌프장 앞 대로에서 22세 가량의 한국인 장발 청년 1명이 알몸으로 신을 벗은채 4백m 가량을 질주.(하략)

(1974년 3월16일자)

치안국은 18일 상오 스트리킹(나체질주)을 할 경우 형법 2백45조(공연음란)를 적용, 형사처벌하도록 전국경찰에 지시…(하략)

(1974년 3월18일자)

◇나체질주자 수사본부

두 사람의 스트리커(나체질주자)를 검거하기 위해 경찰이 「나체질주자 수사본부」라는 이색간판을 내걸고 1주일간 1백여 정사복 수사관을 동원했으나 수사에 진전은 없다. (중략)

경찰이 전국 6대 도시에 내린 장발족 일제 단속령도 스트리킹을 예방하기 위해 내려진 것으로 엉뚱한(?) 피해를 보았다는 어느 철없는 장발 10대는 경찰에서 「스트리커는 우리들의 공적이다」고 말해 단속 경찰관들을 웃기기도. (중략)

목격자에 따르면 두명의 보조자가 옷과 카메라를 들고 뒤따랐는데 동방예의지국의 첫 스트리킹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공개하려 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경찰의 요란한 수사에 꽁꽁 숨어버린 것이다.(중략)

홍익대 박동환 교수(사회철학)는 「설마했던 것이 나타나긴 했지만 크게 번지지는 않고 곧 없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략)

이화여대 김선숙양(20·신문학과3)은 「말할 가치조차 없는 행위」라고 말했고 연세대 이덕승군(법학과2)은 「이번 스트리킹은 단순한 모방과 호기심에서 일어난 충동적인 빗나간 행위일 뿐」이라고.

(1974년 3월20일자)

기사 세편을 일찌감치 베껴놓고 저는 룰루랄라했습니다. 미국 히피와 한국 히피에 관한 '썰'을 풀 준비가 절반은 끝났으니까요. 나머지 절반의 작업을 위해 저 만큼이나 히피에 관심이 많은 후배와 이런 얘기를 나눴습니다.

◇히피는 없고 장발족만 있었다

나:히피하면 떠오르는 거 전부 말해봐.

후배:LSD, 마리화나, 프리섹스, 꽃, 반전운동… 선(禪), 요가, 장발, 스트리킹…

나:스톱! 스트리킹 나왔네. 근데 말야, 한국에서 히피 하면 아직도 양아치와 동의어로 쓰이는 경우가 많잖아.

후배:그렇지.

나:스트리킹하고 히피를 묶어보려고 하는데, 그런데 말야, 한국에 과연 히피와 히피즘이 있었느냐… 없었잖아. 청바지하고 장발족 밖엔.

후배:그건 그래. 재즈가 유행할 때 재즈는 없고 재즈카페만 생겨난 격이라…

나:그래도 한국에서 히피 비슷한 사람이 있다면 누구를 들 수 있을까? 한대수?

후배:전인권! (더 생각해보더니) 신중현은 어때?

나:(신중현에 대해서 동의 안함)

◇미국 히피의 이상은 아름다웠다

후배와 저는 이런 얘기도 나눴습니다.

히피즘이 발전하고 있던 그 무렵 미국은 호황을 누리고 있지 않았느냐, 그래서 미국히피들은 ‘히피처럼' 일 안하고 게으르게 살아도 됐다, 그들에게서 붕뜬 낭만주의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어쩌면 그 때문 아니겠느냐, 그래서 60년대의 미국히피들 가운데 일부가 70년대 오일쇼크라는 방망이를 맞고 여피족으로 변절하거나 방랑자, 노숙자로 전락하지 않았겠느냐, 그래도 미국 히피들의 이상은 아름다웠다, 그들이 꿈꾸었던 공동체와 무릉도원은 찬란했다, 어쨌거나 그들의 베트남 반전운동과 평화주의는 대단한 정치적 압력으로 행사하지 않았느냐, 한대수 노래는 참 좋다, 송창식 윤형주 젊었을 때 찍은 장발 사진 본 적 있느냐…. 다시 한국 얘기.

후배:어쨌거나 당시 `전명길 청년'들의 그런 행동도 뭔가 화나고 갑갑해서, 최소한 심심해서 그랬던게 아닐까?

나:그렇다고 전명길씨한테 무슨 정치사회적인 의식이 있었던 건 아닐 거란 말야.

후배:행위자의 머리속에 무슨 의식이 있어야 정치적인 건 아니라고 봐.

나:그건 그래. 근데 `나체질주자 수사본부'는 암만 생각해봐도 웃기지 않니? 경범죄 정도가 적당했을텐데 형법까지 들이대고.

후배:똘레랑스(관용)의 문제야. 당시 한국엔 똘레랑스가 없었다.

나:그건 요즘도 그래. 하여간 결론좀 내려보자. 히피는 없고 장발족만 있었다?

후배:동의!

늘보<문화평론가>letitb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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