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쟁점토론]지방의원 유급화

  • 입력 2000년 9월 8일 18시 25분


《최근 여야가 무보수 명예직인 지방의회 의원의 유급화를 추진하기로 한 것을 놓고 논란이 분분하다. 정치권은 지방의회 의원들이 의정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보수를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계속 무보수 명예직으로 해야 한다는 반대론과 지방의원 선거구의 재조정, 의원수의 감축 등 지방의회 제도의 전면적인 수술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은 실정이다.》

▼수준높은 의정활동위해 꼭 필요▼

우리의 지방자치단체는 고도로 분화된 산업사회로 1개 광역단체의 인구가 때로는 100만명, 심지어는 1000만명을 넘기도 한다. 교통 환경 실업 생활보호 갈등 해소 등 해결해야 할 문제는 날로 증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지방의회의원들에게는 경륜과 전문성이 요구되고 있다. 자기 생업을 영위하면서 여가시간에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형태로는 임무를 수행하기 어렵다. 지방의회의원이란 직업이 생계를 유지할 수 없다면 경제적으로 안정된 사람만 지방의회의원을 하라는 말이 된다. 이는 직업선택의 자유를 박탈하는 것이고 형평성에 위배되며 지방자치에 전문가의 참여를 배제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지방자치는 지방의 발전과 지역문제의 해결이라는 본연의 목적 외에 풀뿌리 민주주의의 산실이기도 하다. 참된 정치인이 되기 위해 시민의 삶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시민을 위한 정치를 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현장이다. 이들이 정확하게 배우고 풍부한 경험과 실적을 쌓아 유권자로부터 평가받을 때 중앙 정치무대에 등장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될 때 중앙 정치도 희망이 있는 것이며 하루아침에 정치 수준이 향상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지방의회의원의 현실을 보면 안타깝기 짝이 없다. 신분을 명예직으로 규정함으로써 약간의 활동비와 수당은 받고 있지만 보수가 아니기 때문에 직장의료보험 혜택도 받을 수 없으며 은행에서 생활자금을 융자받으려고 해도 근로자 원천징수 영수증을 발급받을 수 없다.

국회의원이 정치를 전업으로 하는데 비해 시도의회의원의 경우 정치는 부업에 지나지 않으므로 후원회를 개최할 수 없다는 헌법재판소의 최근 결정은 어려운 여건에서도 지역발전을 위해 일해온 지방의회의원들의 사기를 땅에 떨어뜨리는 것이었다. 지방의회의원이 부업이라면 지방자치가 부업이란 말인가. 일부 지방의회의원들이 그동안 사회적으로 지탄받을 일을 저지르기도 했지만 지방의회의원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은 너무 차갑다. 지방자치가 부활된 지 10년째이지만 격려와 지원보다는 비판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런 환경은 지방 발전은 물론 국가 발전에 있어서도 역기능을 초래한다.

지방의회는 조례 제정권, 예산심의 결정권, 행정사무 조사 감사권, 청원수리권, 각종 도시계획 의견 청취, 중요 안건의 보고 질의응답 등의 법적 권한을 가지고 지방자치의 한 축으로서 기능하고 있다. 서울시의회를 예로 들면 서울시와 시교육위원회 예산 13조원을 심의 결산하고 있다. 이는 세계적으로 볼 때 작은 국가 이상의 규모다. 인구가 1000만명이 넘을 정도로 방대하고 모든 도시 문제가 집적된 복잡도시로서 행정수요는 날로 증가하고 있는데 명예직 신분인 지방의회의원이 생업에 종사하면서 제 기능을 수행하기는 더 이상 불가능하다. 지방자치의 발전을 위해 지방의회의원 유급제가 하루 빨리 실시돼야 한다.

이용부(서울시의회 의장)

▼의원수 축소-선거제 개혁 선행돼야▼

여야는 최근 지방의회 운영의 내실을 기한다는 명분으로 지방의회 의원의 유급화를 추진하고 있다. 현재 무보수 명예직으로 규정돼 있는 지방의회의원의 신분을 유급제로 전환해 자치단체장의 방만한 재정 운영을 견제토록 하는 등 지방의회 본연의 기능이 활성화되도록 한다는 취지에는 원칙적으로 찬성한다.

더욱이 법적 형식만 명예직일 뿐 실제로는 이미 월정액으로 의정활동비가 지급되고 있고 그밖에 회기수당 및 여비도 만만치 않게 지급되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방의회의원을 유급제로 전환하기에 앞서 제도의 본 뜻을 살릴 수 있는 몇 가지 전제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그것은 지방의회제도의 전면적인 개혁이다.

일반적으로 지방의회의원의 신분을 유급직으로 규정하고 있는 국가에서는 의원정수가 적은 소의회형을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의원정수가 많은 대의회형을 채택하고 있다. 현재의 의원정수를 그대로 두고 유급화할 경우 그렇지 않아도 열악한 지방재정 상태를 더욱 악화시킬 소지가 있다. 따라서 지방의회의원을 유급화하기 위해서는 의원정수를 감축하는 제도정비가 선행돼야 할 것이다.

지방의회의원이 다른 유급직을 겸할 수 있도록 한 현행 규정도 겸직을 금지하는 방향으로 개정돼야 한다.

또한 지방의회의원의 유급화를 계기로 전문성을 지닌 유능한 인재들이 보다 많이 지방의회에 진출할 수 있도록 선거구를 중대선거구로 바꾸고 현재의 기형(畸形)적인 정당공천 제도도 합리적으로 재정비하는 문제를 검토해 보아야 할 것이다. 1991년 30년 만에 부활된 우리나라의 지방의회는 그동안 각종 비리와 저질 행태, 비전문성으로 지방의회 무용론까지 불러일으킬 정도로 그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의 소선거구제는 지방의회의원이 자신의 지역구 이해에만 매달리게 하는 폐단을 드러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유능한 전문인력의 의회 진출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물론 선거구 확대는 지방의회의원을 잠재적 경쟁자로 인식하는 국회의원들의 반대로 상당한 진통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기초단체장의 경우에는 정당공천을 허용하고 있으나 기초의원의 경우에는 정당공천을 금지하는 비정상적인 현행 공천제도도 지방자치의 본 뜻을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지방의회의원의 유급화는 의원정수 축소, 선거제도 개선 등 관련 제도를 정비한 뒤 다음 임기부터 시행하자는 것이다. 현재의 지방의회의원의 임기는 절반도 남지 않았을뿐더러 더욱이 현재의 지방의회의원은 유급제를 전제로 선출된 것이 아니다.

지방의회의원의 유급화뿐만 아니라 현재 쟁점이 되고 있는 국회 교섭단체 정수의 하향 조정과 같은 정치제도의 변경은 다음 임기부터 시행하도록 제도화할 경우 우리의 정치문화는 한층 더 성숙될 수 있을 것이다.

이종수(경실련 정부개혁위원장·한성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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