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남북관계, 절차도 중요하다

  • 입력 2000년 9월 5일 18시 58분


대한적십자사가 지난달 26일 남북적십자회담을 5일에 갖자고 제의한데 대해 북한적십자회가 아무런 응답조차 하지 않은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남측이 열흘 동안의 여유를 두고 회담을 제의했다면 “그렇게 하자”든지 아니면 “연기를 해야할 처지니 다른 날짜에 하자”는 등의 수정제의를 하는 것이 남측에 대한 북측의 도리이자 예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북한적십자회는 당일인 어제까지 입을 다물었다. 북측 판문점 연락관은 남측이 궁금해 묻자 “적십자회담에 대한 상부의 지시가 없었다”는 얘기만 했다고 한다. 물론 북측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남북한이 앞으로 여러 사업을 펼쳐나가려면 서로간의 신뢰와 신의를 쌓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그럼에도 최근의 몇가지 사례를 보면 북측이 그같은 신뢰와 신의를 쌓기 위한 기본적인 ‘룰’이나 ‘절차’를 지키지 않는 것 같아 유감이다. 이에 대응하는 우리측의 물러터진 자세도 문제다. 절차나 형식이 내용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한가지 예가 지난번 2차장관급 회담이다. 박재규(朴在圭)통일부장관을 비롯한 남측대표단은 북측이 어떤 일정을 마련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평양행 비행기를 탔다. 북측에서 사전에 아무런 연락도 없었기 때문이다. 회담도 북한이 제안한 경협문제 등은 쉽게 합의가 이뤄졌으나 우리측이 주장한 군사관련 의제는 일정을 하루 더 연기하며 간신히 앞으로 ‘협의’ 또는 ‘노력’한다는 식의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이산가족 면회소설치나 국군포로 및 납북자 송환문제에 대해서는 아예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상황이 그렇게 돌아간 것은 성과에만 지나치게 급급했던 정부의 책임도 적지 않다.

북한이 조기 지원을 요청한 식량차관도 마찬가지다. 대북(對北) 식량지원은 인도주의적인 측면에서 볼 때 반대할 이유가 없지만 성급히 지원만 하려 한다면 또다시 “북한의 요구에 끌려만 다닌다”는 비판만 듣는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국회에서 차관제공의 조건이나 수량 등을 충분히 토의하는 등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

남북한간에는 이달만 하더라도 국방장관회담, 북한의 경제사절단 서울 방문, 경의선철도 복원사업기공, 백두산―한라산교차관광 등 6·15남북공동선언을 가시화하는 후속회담과 사업들이 줄지어 예정되어 있거나 제의된 상태다. 이럴 때일수록 남북한 당국은 필요한 절차와 방법을 차근차근 밟아나가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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