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임기6년 마치고 퇴임하는 김용준 헌재소장

  • 입력 2000년 9월 4일 19시 03분


《14일로 임기 6년을 마치는 김용준(金容俊)헌법재판소장을 4일 오전 그의 집무실에서 만났다. 법관생활 40년 20일만의 퇴임이다. 그가 제2대 소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헌재는 국민의 기본권에 관한 사건 외에 미묘한 정치적 사건도 많이 다뤄 관심을 끌었다. 특히 그는 다리 장애를 극복한 활발한 삶으로 ‘장애인들의 희망’이기도 했다. 앞으로 장애인들을 돕는 일로 그동안 ‘사회에 진 빚’을 갚는 게 꿈.》

―지난 6년을 돌이켜 보면 보람과 함께 아쉬움도 있으리라고 생각됩니다만.

“크고 작은 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방향을 제시해 왔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낍니다. 아쉬운 일이라면 예산과 연구인력을 확보해 효율적인 업무집행을 뒷받침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헌재 창설 후 12년이 우리 사회에 끼친 영향의 하나는 ‘헌법의 생활화’에 기여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 전에는 ‘헌법은 일반국민과 상관 없는 것’이라는 인식이 많지 않았습니까.

“그렇습니다. 헌재 창설 당시에는 누구도 헌재가 지금처럼 활성화되리라고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헌재의 결정들은 국민 생활과 직결되는 것이 많았고 국민의 기본적 인권보호에 상당히 기여했다고 봅니다. 이제는 국회가 입법을 할 때나 행정기관이 처분을 할 때도 헌재의 판단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됐습니다. 이제 헌법은 ‘장식품’이 아니라 ‘생활규범화’됐다고 볼 수 있지요.”

―지난해 말에는 군필자 공무원시험 가산점제도에 대한 위헌결정으로 많은 논란과 비난이 일었습니다. 그때 심정은 어땠습니까.

“6년 동안 내린 결정중 가장 많은 비난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당시 결정은 재판관 9명 이 전원일치로 내린 것입니다. 그러나 비난은 결정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데서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필기시험 100점 만점에 군필자에게 5점을 가산해 준다면 군필자가 아닌 사람은 시험을 보지 말라는 이야기와 같습니다. 군필자에게는 응시 제한 연령을 늦춰 주거나 채용후 호봉을 높여주는 등 다른 방법으로 지원하는 게 옳습니다. 당시 일부 재판관에게 시민들이 전화를 걸어 ‘당신 군대 갔다 왔느냐’ ‘군법무관도 군대냐’라고 야단을 쳤다더군요. 지금 다시 생각해도 잘못된 결정이 아니라고 봅니다.”

―지금까지 가장 보람 있었던 결정은.

“과외금지사건 위헌결정입니다. 당시 결정은 단순히 불법과외 형사처벌 조항에 대해 위헌을 결정한 차원을 넘어 입시제도 등 우리의 교육제도 전반을 재검토할 전기를 마련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교육제도에 문제가 많은 것이 사실 아닙니까. 우리는 ‘산술적 평등’을 너무나 강조합니다.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못 참는다’는 말도 있지요. 민주주의가 시장경제와 법치주의를 근간으로 한다면 경제적 불평등은 어쩌면 불가피한 일이 아닐까요.”

―96년 양도소득세법에 대한 ‘한정위헌’ 결정의 효력을 놓고 대법원과 헌재가 견해가 달라 갈등을 빚은 일이 있습니다. 이는 두 기관간의 자존심과 위상 다툼이 근본원인이라는 평가가 많았는데 위상문제는 어떻게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두 기관 모두 헌법을 수호하고 국민 기본권을 보호하는 국가기관입니다. 두 기관이 갈등관계이면 법률해석의 통일과 안정을 저해해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효율적으로 구제하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근본적으로는 (두 기관의 권한에 대한) 입법을 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그리고 두 기관이 운용의 묘를 살려야 합니다. 서로의 권한을 존중해야죠.

우리 헌법은 두 기관을 대등한 관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독일의 경우 법원의 재판도 헌법소원 대상입니다. 헌법재판소가 재판의 잘잘못까지 따진다는 것이지요. 물론 독일과 우리는 다릅니다만 두 기관의 위상 문제가 입법적으로 해결될 때까지는 양자가 합리적으로 해결해 나가야 합니다.”

―종종 대법관 임용에 탈락한 고위 법관이 헌재 재판관에 임명된다는 이유로 대법원은 헌재를 한 단계 낮게 보는 경향도 있는데요.

“법원에서는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꼭 대법관 탈락자가 재판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반면 검찰 고위인사들의 상당수는 업무가 과중하고 권한이 적은 대법관보다 헌재 재판관을 선호하고 있다는 얘기도 있습디다(웃음).”

―재판관 3명은 대통령이 임명하고 3명은 대법원장이 지명합니다. 또 국회가 3명을 선출합니다. 야당에 의해 선출된 재판관이 야당을 두둔한다든지 자신을 임명해준 기관을 지나치게 의식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우리 현실에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초창기에는 그랬는지 모르지만 차차 없어질 겁니다. 학자들은 ‘친정’을 의식한다는 것보다 대법원장이 재판관을 지명하는 것에 더 문제를 제기합니다. 국민이 직접 선출하지 않은 대법원장이 재판관 3명을 지명하는 것은 ‘민주적 정당성’면에서 문제가 있다는 거죠.”

―헌재 소장과 국회가 선출하는 재판관 3명에 대해서만 국회가 인사청문회를 열 수 있도록 한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 있는데요.

“그렇습니다. 청문회를 하려면 국회가 선출에 간여하지 않는 나머지 5명을 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옳지 않나 생각합니다. 국회는 미리 미리 조사해 자격이 안 되는 사람은 아예 선출하지 않으면 그만 아닙니까. 또 헌재 소장과 재판관의 대우 및 보수는 대법원장과 대법관의 ‘예’에 준한다고 헌법재판소법이 규정하고 있으므로 대법원장과 대법관 모두 청문회를 거치게 돼 있는 것처럼 헌재도 소장과 재판관 전원에 대해 청문회를 실시해야 한다는 논리도 있습니다.”

―정치인 또는 정치 지도자들의 법의식 부족이 많이 지적되고 있습니다만.

“법이란 상식입니다. 우리는 상식을 가벼이 여기는 풍조가 있습니다. 식민지시대를 거쳐 ‘덜 민주적인’ 정치체제를 거치면서 법에는 저항해야 한다는 인식이 퍼진 것이 원인이라고 봅니다. 조선시대 ‘세종실록’에도 ‘법은 만들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집행하기가 어렵다’고 돼있습니다. 지킬 수 없는 법을 만들고 자의적으로 집행하거나 집행을 안 하면 법치주의가 확립되지 않습니다. 고속도로에 버스전용차로를 만들어 놓고 강하게 단속하지 않으면 지나다니는 수많은 사람들이 법의 무력함을 경험하게 돼 법 경시와 법 불신이라는 더 안 좋은 효과만 얻을 것입니다.”

―헌법재판소의 역할에 관한 세계적 추세는 어떻습니까.

“94년 12월 3일자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3년 동안 연구한 자체 헌법개정안을 보도했습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이 ‘자위력 보유’와 ‘헌법재판소 창설’입니다. 이 신문은 헌재를 모든 법원의 위에 놓는 독일식을 추천하고 있습니다. 또 학자인 이토 마사미(伊藤正己)도 ‘재판관과 학자의 사이’라는 저서에서 대륙형(독일식) 헌법재판소를 제안했습니다.

우리 헌재는 일본보다도 앞서 있고 국민 기본권을 효율적으로 보장해 나갈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헌재 소장이나 재판관의 임기가 너무 짧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연임이 거의 허용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경우 30년 이상 재직한 연방대법관이 11명이나 됩니다. 그래서 ‘미국은 연방대법원(헌법재판소 역할)이 통치한다’는 말이 나오지 않습니까.”

―퇴임 후의 계획은.

“혼자 변호사로 개업할 생각은 없습니다. 로펌 몇 군데에서 고문으로 오라는 곳이 있어 생각중입니다. 특히 나는 장애인으로서 사회에 진 빚이 많습니다. 불우청소년과 장애인들에게 사랑의 빚을 갚으며 살아갈 생각입니다”

<정리〓신석호기자>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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