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駐美대사의 DJ '과찬'

  • 입력 2000년 8월 18일 18시 38분


양성철(梁性喆) 주미(駐美)대사가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의 연설 내용 중 김대중(金大中)대통령에 대한 부분을 얘기하면서 전혀 언급하지 않은 말까지 보태 기자들에게 전언(傳言)한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양대사는 클린턴대통령이 14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전국민주주의연구소(NDI) 주최 연설에서 “민주주의가 아시아에 맞지 않는다는 얘기가 있으나 김대중대통령이 당선됨으로써 아시아에서도 민주주의가 보편적 가치임을 입증했다”고 말한 것으로 기자들에게 전했다고 한다. 행사 자체가 각국 외교사절만 참석했고 기자는 없었던 상황이라 양대사의 이 같은 전언은 국내신문에 그대로 기사화됐다.

그러나 정작 백악관측이 클린턴의 연설을 녹취해 발표한 보도자료에는 그 같은 내용이 없다. 다만 ‘아시아의 경우 지도자들은 민주주의가 서구의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틀린 말’이란 내용은 있으나 이것이 김대통령의 당선으로 입증됐다는 뜻은 아니다. 연설문중 김대통령에 대한 것은 “김대중대통령을 생각해 보라. 김대통령은 변화를 주도할 수 있는 정통성을 가졌기 때문에 경제적 위기를 극복했고 북한과의 접촉에서 용기 있는 조치를 취했다”는 것이 전부다.

우리는 양대사가 기본적으로 영어를 잘못 알아들은 것인지 아니면 의도적으로 김대통령에 대한 클린턴의 칭찬을 부풀리려고 한 것인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사정이야 어떻든 주미대사가 클린턴대통령의 연설 내용을 잘못 알아들을 정도라면 보통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칭찬을 의도적으로 부풀리려 했다면 그것은 더 큰 문제다. 기자들에게 없었던 말까지 보태면서 대통령을 미화하고 칭송하는 행동은 바로 권위주의시대의 구태다.

얼마 전 외교통상부측이 재미(在美)동포들에게 “8·15를 맞아 6·15남북공동선언을 지지하는 집회를 하라”고 ‘권유’한 것도 권위주의 시절에나 보던 행태다. 외교부측은 “8·15행사를 한다면 거기에 6·15공동선언을 환영 지지하는 순서도 넣으면 좋겠다”는 협조 요청을 교포단체에 한 것뿐이라는 설명이다. 군색한 변명이다.

이 ‘협조 요청’은 결국 이산가족 상봉신청에서도 제외되어 소외감을 갖고 있던 이북 출신 교포들을 자극해 뉴욕총영사관 앞에서 한시간 이상이나 시위를 벌이는 소동이 있었다고 한다.

국제화시대에 가장 앞서나가야 할 외교부가 구시대적 ‘협조 요청’이나 하고 대사가 주재국 대통령이 하지도 않은 말까지 지어낸다면 어떻게 선진 외교를 한다고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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