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외설'의 기준

  • 입력 2000년 7월 19일 19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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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작품을 놓고 음란물이냐, 아니냐를 가리는 일은 무척 어렵다. 보는 사람에 따라 정반대 의견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음란의 기준은 시대 상황에 따라 변하게 마련이다.

이 점에서 외설 문제를 판단하는 사법부와 검찰의 고충을 충분히 헤아릴 수 있다. 성의 개방화 추세 등 사회 변화를 수용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공중도덕과 사회윤리를 보호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음란물과 관련해 법원과 검찰이 내린 ‘결론’은 국민을 매우 혼란스럽게 만든다. 엊그제 서울지법은 만화 ‘천국의 신화’에 대해 음란성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는 얼마 전 검찰이 외설 시비에 휘말려온 영화 ‘거짓말’을 무혐의 처리한 것과 상반되는 판결이다.

두 작품의 음란성 여부는 문화계 안팎의 핫 이슈였다. 결과적으로 같은 시기에 한 작품에 대해서는 엄중한 문책이, 다른 작품에는 관대한 처분이 내려진 것이다.

물론 두 작품은 장르와 성격이 다르다. 하나는 청소년용 만화이고 다른 하나는 성인영화다. 그러나 외설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무혐의 처분이 내려진 ‘거짓말’의 경우도 비판여론이 만만치 않았다. 영화를 접한 상당수가 ‘외설’이라는 반응을 보였고 심지어 유엔에서도 ‘아동 포르노’라고 규정했다.

혼란스러운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성인비디오를 예로 든다면 도대체 외설인지 예술인지 구분하기 힘든 것들이 많다. 노골적으로 외설을 겨낭해 제작된 것도 있다. 이런 것들이 어떻게 영상물등급위원회를 통과할 수 있었는지 의문스러울 정도다. 국내법은 분명 포르노를 금지하고 있다.

성에 대한 인식이 바뀐 만큼 일반인들이 예술 속의 성(性) 표현을 수용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졌으며 그에 따라 외설에 대한 기준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문제는 그 틈을 헤치고 ‘예술’을 가장한 음란물들이 곳곳에서 활개를 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법원과 검찰의 엇갈린 결정은 이 같은 혼돈상을 반영하는 측면이 있다. 법의 잣대가 들쭉날쭉해질 정도로 사회적 기준이 크게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이를 바로잡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우선 사회적 합의를 통해 현 시점에 맞는 음란물의 잣대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선진국처럼 대규모 여론조사를 통해 시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외설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구체화하는 것도 한가지 방법이다. 영상물등급위원회 같은 등급결정 기구들도 일관성 있는 판단을 내려야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 아울러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한 등급외영화관 설치 문제도 다시 추진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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