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주한미군 환경오염 실태

  • 입력 2000년 7월 13일 19시 10분


독극물인 포름알데히드 한강 방류로 다시 불거진 주한미군의 환경오염 실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건축 폐기물 무단 매립 투기는 물론, 기름 유출로 인한 토양오염, 최근의 매향리 사태에 이르기까지 알려진 것만 해도 10건이 넘는다.

미군 주둔기지는 일반인은 물론 정부도 접근할 수 없는 ‘치외법권’ 지대. 그 안에서 알려진 것 외에 또 어떤 환경오염이 저질러지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알려진 것만 10여건▼

▽환경오염 실태〓가재와 송사리가 노닐던 경기 의왕시 백운산 계곡. 지금은 기름이 범벅된 ‘죽음의 골짜기’가 돼 버렸다. 98년3월 7분 능선에 위치한 미8군 통신부대 매디슨 기지 안에 설치된 기름탱크에서 다량의 경유가 유출돼 계곡을 오염시켰다. 사고가 발생한지 2년4개월이나 지났으나 지금도 계곡에는 기름으로 변색된 바위가 널려 있고 실개천은 기름을 빨아들이는 시커먼 흡착포로 뒤덮여 있다. 토양오염도 심각하다. 백운산 계곡 주변 논밭까지 기름이 스며들었다. 환경 전문가들은 100년이 지나도 회복될 가능성이 없다고 말한다.

경기 평택시 오산 공군기지가 위치한 진위천의 경우도 미군부대에서 새어 나오는 기름으로 논과 지하수가 심각하게 오염돼 물고기를 잡으면 악취가 날 정도. 전북 군산에서는 지난해 10월 미군이 기름이 섞인 오폐수를 무단 방류하다 시민단체에 적발되기도 했다. 국방부와 주한미군에 따르면 미군이 장비연료용이나 난방용으로 사용중인 기름탱크는 모두 2000여개. 대부분 50, 60년대에 설치돼 아주 낡은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건축 폐기물을 마구잡이로 버리는 사례도 적지 않다. 오산공군기지가 들어서 있는 서탄면 금각리와 황구지리. 미 공군의 지반다지기 작업이 한창인 가운데 폐콘크리트와 폐아스팔트 등 건축 폐기물이 산처럼 쌓여 있다. 시당국과 지역주민들은 “미군이 이 일대에 매립한 각종 폐기물은 2만여t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미군 기지 주변 주민들이 심각한 납중독 난청에 시달리고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최근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가 미공군 ‘쿠니사격장’이 있는 경기 화성군 매향리 주민 2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들의 평균 혈중 납농도가 직업적으로 납을 다루는 근로자의 1.7배나 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서독내 미군주둔지 358곳에 환경손상이 발생, 토지정화 비용만 1억6000만∼5억8000만 달러에 달한다는 독일 일간지 ‘타게스차이퉁’의 보도 등을 감안할 때 주한미군의 환경오염은 알려진 것보다 훨씬 심각할 것이라고 말한다.

▽시민 반응과 대책〓독극물 무단 방류 주장이 제기되자 시민단체들은 우려의 목소리와 함께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을 요구하고 나섰다. 현재 정부는 미군의 환경오염 실태를 파악도 못하고 있다. 미군의 협조 없이는 조사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

경실련 박병옥(朴炳玉)정책실장은 “이번 사건은 미군의 환경오염을 제지할 수단이 없다는 데서 생긴 구조적 문제”라며 “형사권 관할 뿐만 아니라 환경 노동에 관한 제반 문제들도 SOFA 개정에 포함시켜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백동명교수는 “미군이 자국에서 발암물질로 지정된 물질을 정화처리도 하지 않은 채 방류했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배상절차등 명문화 절실▼

경희대 법대 최승환(崔昇煥)교수도 “정부가 이번 SOFA 개정 협상에서 미군의 환경오염 실태조사와 배상절차 등이 명문화될 수 있도록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필리핀의 경우 미군이 92년 클라크 공군기지와 수비크만 해군기지에서 철수하며 남긴 폐기물로 환경오염이 심각해지자 정부가 직접 나서 미국에 보상을 요구했으나 미국 정부가 “증거가 없다”며 묵살한 것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것.

<정용관기자>yong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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