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파업]李재경 파업협상으로 訪日 일정 취소

  • 입력 2000년 7월 7일 18시 51분


7일 금융노조와의 협상테이블에 나온 이헌재(李憲宰)재정경제부장관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은행 노조의 파업철회를 설득하기 위한 자리인 만큼 중압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 그러나 재경부 관계자는 “국제적 약속을 지키지 못한데 따른 부담도 작용했을 것”이라고 귀띔.

당초 이날 협상의 대표로는 이용근(李容根)금융감독위원장과 이용득(李龍得)금융노조위원장이 나설 예정이었다. 이장관은 서방선진7개국(G7) 재무장관 회의에 맞추어 일본 후쿠오카에서 열리는 ‘세계경제 심포지엄’에 참석하도록 일정이 잡혀있었다.

이금감위원장은 6일 협상개최 사실을 발표하면서 재경부장관은 참석하지 않는다고 밝혔고 재경부는 1박2일간의 짧은 방일기간에 장관이 만날 국제금융계 인사와의 면담 스케줄을 확정짓느라 분주했다.

금융노조측이 이장관의 참석을 강하게 요구하면서 일이 꼬였다. 재경부는 “하루 전에 국제회의 일정을 취소하는 것은 외교상 결례”라며 난색을 보였지만 “이장관이 불참하면 협상에 응할 수 없다”는 금융노조의 ‘버티기’에 물러서고 말았다.

결국 정부는 부랴부랴 주최국인 일본정부에 양해를 구한 뒤 기조연설자를 엄낙용(嚴洛鎔)차관으로 교체했다.

이번 심포지엄은 국제금융질서에 대한 아시아권 개발도상국들의 요구사항을 집약, 이를 선진국들에 전달할 목적으로 마련된 회의. 이장관은 태국 재무장관과 함께 ‘개도국 대표’ 자격으로 초빙됐으며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 일본 대장상과 별도로 만나 양국 금융협력 방안도 논의할 계획이었다.

노조가 이장관의 참석을 요구한 것은 금융구조조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장관이 차지하는 현실적 위치와 말의 무게를 감안해 ‘실세와 협상을 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장관은 “이번 협상은 금감위원장이 처리할 사안인데…. 내가 왜 나서야 하는지 모르겠다”면서 씁쓸해했다. 재경부는 “정부가 협상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자는 취지에서 일정을 변경한 것”이라면서도 “장관이 노조파업 때문에 국가간의 약속도 못지키는 상황이 국제 금융계에 어떻게 비칠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박원재기자>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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