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아하!질병이야기]사람은 왜 아플까?

  • 입력 2000년 7월 4일 18시 44분


사람은 왜 병에 걸릴까? 왜 어떤 사람은 병을 이겨내고 어떤 사람은 굴복할까?

고타마 싯달타가 출가토록 만든 질문의 하나이다. 과거 숱한 사상가 과학자들이 이 문제를 파고 들었다. 최근 감기로 이틀 동안 어린이집에 못간 다섯 살 배기 한솔이도 궁금하다. 왜 사람은 아플까?

최근 생물학과 면역학의 발달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어슴프레 보여주고 있다. 해답의 중심엔 면역계가 있다.

◆T세포 97% '교육과정'서 탈락

▽면역계와 흉선〓우리 몸의 세포는 마치 아군임을 나타내는 견장처럼 ‘주요조직 적합 유전자 복합체’(MHC)라는 단백질을 갖고 있다. 면역계는 ‘견장’이 다른 세포를 솎아낸다. 견장이 다른 세포에는 원래 아군이었던 것도 포함된다(그래픽 참조).

면역계의 중심엔 흉선이 있다. 흉선은 가슴에 있는 말랑말랑하고 뽀얀 장기. 흉선은 면역반응을 담당하는 T세포를 만들어 혈액으로 내보낸다. 이 과정은 ‘스파르타식 교육’을 연상시킬 정도로 엄격하다. 건강한 인체에선 생산된 T세포의 96∼97%가 흉선의 교육과정에서 탈락한다. 자기를 공격할 수 있거나 세균이나 바이러스 같은 비자기(非自己)를 인식하지 못하는 세포는 모조리 탈락하는 것.

◆60代 흉선무게 10代의 25%불과

▽면역계의 노화와 질병〓흉선은 10대 전반에 최대 35g이지만 40대에선 절반, 60대에선 4분의1로 준다. 흉선이 퇴화하면서 면역계에 자기를 공격하는 T세포가 돌아다니게 된다. 류머티스성 관절염은 면역계가 정상조직을 공격하는 ‘자가면역성 질환’의 하나로 중년이후의 병이다. 이와 함께 암세포를 죽이는 NK세포와 킬러 T세포의 양이 급격히 줄어 암의 발생이 는다. 예전엔 암 유전자가 암을 일으킨다고 여겨졌지만 최근엔 DNA가 고장났을 때 이것을 고치는 시스템이 붕괴되면 암이 생기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바이러스도 생존위해 숙주 안죽여

▽세균 및 바이러스와 군비경쟁의 역사〓바이러스는 면역계를 교란시키는 작전을 끊임없이 개발한다. 감기를 일으키는 리노바이러스는 임파구가 바이러스에 대포를 쏘는 ‘포문’에 결합해 포문이 열리면 세포 안으로 쏙 들어간다. 성병을 일으키는 클라미디아는 백혈구 안에 들어간 다음 자신을 소화시키지 못하도록 방벽을 쌓는다. 말하자면 도둑이 경찰서 안에 둥지를 트는 격. 에이즈의 원인인 HIV는 항원을 면역계에 알리는 보조T세포 안에 숨는다. 면역계의 진화는 이들 바이러스 및 세균과 싸우는 역사였다.

그러나 바이러스도 자기의 생존과 번식을 위해 활동하는 것이지 숙주를 무조건 끝까지 해치는 것은 아니다. 만약 숙주를 죽여 없앤다면 바이러스도 둥지를 틀고 살아갈 근거지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이성주기자>stein33@donga.com

◆감기 매년 걸려도 똑같은 바이러스 없어

▽다른 병은 한번 걸리면 항체가 생겨 두 번 다시 걸리지 않는데 감기는 왜 해마다 걸리나?〓사실 감기에 걸려도 항체가 생긴다. 전에 앓았던 감기 바이러스와 똑같은 바이러스가 몸에 들어오면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감기 바이러스는 리노 파라인플루엔자 아데노 등 수 십 가지인데다 각 바이러스도 끊임없이 변신한다. 이렇게 변신한 바이러스가 새로운 감기를 걸리게 하는 것이다. 또 감기로 알고 있는 질환 중 상당수는 알레르기성 비염 등 다른 질환이다.

◆면역반응 억제하는 T세포 제기능 못해

▽알레르기란?〓면역계가 특정 음식 성분이나 꽃가루 등 공격하지 않아도 되는 대상을 물리치려고 과민하게 반응하는 과정에서 신체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 흉선에서 만들어지는 T세포 중 면역반응을 억제하는 억제T세포가 제 역할을 못하면 알레르기가 생긴다. 그러나 왜 억제T세포가 제 구실을 못하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최근 사람의 염색체 23쌍 중 11번째 염색체에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유전자가 있으며 주로 어머니를 통해 아이에게 유전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고개 세번 흔들며 메추라기처럼 울어

▽메추라기에서 뇌 전단계인 ‘뇌포(腦胞)’를 떼어내 닭의 배(胚)에 이식하면 알을 깨고나와 어떻게 울까?〓실험 결과 이 키메라는 고개를 한 번 흔들며 삐삐 우는 병아리 방식이 아니라 고개를 세 번 흔들며 삐삐삐 메추라기의 방식으로 울었다.

다만 병아리의 발성기관을 갖기 때문에 소리는 메추라기보다 고음이었다. 이 키메라는 10여일 만에 죽는다.

면역계가 메추라기의 뇌를 외부에서 침입한 세균과 같은 존재로 인식해 죽여버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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