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존/오우삼 특집]"오우삼의 성공시대"

  • 입력 2000년 6월 16일 15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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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년 여름 <브로큰 애로우>를 찍고 있던 촬영지 캘리포니아의 모자비 사막 벌판. 오우삼은 수 십 명의 스탭 앞에서 광둥식 중국요리를 손수 짓고 있었다.

뜨거운 햇빛과 지열이 이글거리는 가운데 공수해온 새우로 튀김 요리를 만드는 오우삼의 얼굴은 진지하고 일그러져 있었다. 홍콩영화의 신화였으며 쿠엔틴 타란티노, 로베르토 로드리게즈를 비롯한 90년대 헐리우드 악동 감독의 우상이었던 그도 헐리우드로 건너와 두 번째로 만드는 <브로큰 애로우>의 미래를 확신하지 못했다.

더딘 촬영진도와 스튜디오의 간섭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워진 그는 스탭들에게 중국 요리 잔치를 벌이는 자기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으로 조용히 대응한 것이다.

<브로큰 애로우>는 헐리우드로 간 오우삼에게 입신양명하느냐, 그저 그런 B급 영화감독으로 주저앉느냐는 갈림길이었다. 오우삼의 헐리우드 데뷔작이었던 <하드 타켓>은 R 등급과 NC 17등급 사이에서 실랑이를 벌이며 미국 심의등급위원회로부터 일곱 번이나 반려 당한 끝에 결국 개봉했지만 흥행과 비평 모두 좋지 못했다.

피를 양동이로 화면에 쏟아 붓는 것 같은 오우삼의 폭력묘사는 미국 액션영화의 흐름과는 동떨어진 것으로 비쳐졌다. 그가 집어넣고 싶어했던 주요 액션 장면은 스튜디오 간부들의 반대로 삭제됐다. 영어에 서툰 이 동양감독은 홍콩에서 발휘하던 카리스마가 스튜디오 간부들에게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절감했다.

"홍콩에선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영화사와 한 번 회의를 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촬영장에선 콘티도 없이 내 마음대로 찍을 수 있다. 그러나 헐리우드에선 모든 것이 회의, 회의, 회의다. 8개월간의 제작 기간 동안 거의 매일 회의에 불려간 것 같았다. 제작 규모는 큰 데 시간은 모자란다. 시간은 곧 돈이기 때문이다"라고 오우삼은 말했다.

<하드 타켓>이 개봉된 후 오우삼은 2년간 여러 프로젝트에 매달렸지만 어느 것도 성사가 쉽지 않았다. 마침내 오우삼은 20세기 폭스가 배급하는 <브로큰 애로우>를 연출하기로 결정했다. 그것은 존 트라볼타와 크리스찬 슬레이터라는 스타가 나오고 특수효과에 굉장한 예산을 투자한 대작 영화였다.

폭스는 이 영화를 제 2의 <스피드>로 기획했다. <스피드>의 시나리오 작가 그라함 요스트를 비롯해 스턴트 코디네이터, 편집자에 이르기까지 <스피드> 제작진으로 진용을 짠 제작자 마크 고든은 네덜란드 감독 얀 드봉을 데려다 기적을 만들었듯이 홍콩 출신 감독이 또 다른 마술을 이뤄내지 않을까 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오우삼은 자신이 통솔할 수 없는 특수효과 위주로 제작이 진행되는 것에 당황했다. "일부 제작진은 자기 식으로 영화를 만들고 싶어했다. 그들은 내게 알리지 않고 영화를 바꿨다. <브로큰 애로우>는 아주 규모가 큰 특수효과가 있는 영화였다. 우리는 특수효과에 너무 많은 시간을 들였다. 모든 드라마 장면은 급히 찍어야 했다. 45분만에 서둘러 찍은 장면도 있었다. 불공평했다."

<브로큰 애로우>는 <하드 타켓>에 비해 조금 더 나아졌지만 여전히 스튜디오의 간섭으로 고통받은 흔적이 있다. 영화가 시작하면 존 트라볼타와 크리스찬 슬레이터가 복싱 링에서 대결하는 장면이 나온다. 카메라가 부감에서 서서히 줌으로 좁혀갈 때 스크린의 화면에는 조금씩 오우삼식 긴장감이 배어 나오지만 그것으로 끝이다.

오우삼 스타일은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다시 한 번 스튜디오는 오우삼이 최고의 것을 추구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나는 폭스에서 굉장한 지원을 받았으며 또한 압력도 많이 받았다. 스튜디오는 큰 기대를 걸고 있었으니까."

오우삼은 <브로큰 애로우>로 비로소 헐리우드 시스템을 배웠다. 예산을 초과하지 않고 정해진 시간에 영화를 만드는 게 헐리우드에선 핵심이다. <첩혈속집>은 123일의 촬영기간과 4백5십만 달라의 예산, <첩혈가두>는 110일에 3백5십만 달라의 제작비로 찍었지만 <브로큰 애로우>는 5천만 달라의 제작비에 90일 동안 촬영했다.

"헐리우드에선 예산과 일정을 넘기면 다음부터 누구도 고용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예산을 지키면 엉망인 영화를 만들었어도 다시 일거리를 얻는다. 홍콩에서 나는 모든 것을 통솔할 수 있었다. 우린 얼마든지 예산을 어길 수 있었고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했다. 그러나 이곳은 다르다." <브로큰 애로우>를 핵 폭탄 소재의 또 다른 <스피드>로 몰고 가려 한 폭스 간부들의 생각에 오우삼은 맞서지 못했다. "거기에 맞서 싸울 시간이 없었다."고 오우삼은 말했다.

<브로큰 애로우>는 블록버스터와 오우삼의 서명이 약간 절충된 밋밋한 영화가 됐다. 흥행은 그럭 저럭 괜찮았지만 비평가와 오우삼의 광적인 팬들은 만족하지 않았다. 별로 비장하지도 않고 격렬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오우삼은 "완벽한 영화는 아니다. 그러나 그래도 난 그 영화가 자랑스럽다. 비장미가 없다고? 홍콩영화와는 달리 미국 영화의 영웅은 결코 죽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반격이 시작됐다. <페이스 오프>는 전혀 다른 영화였다. 제작자인 마이클 더글라스는 오우삼을 전폭적으로 지원했으며 오우삼이 원하는 대로 찍게 내버려뒀다. 초반부 비행장에서 벌어지는 총격 장면은 장대한 오우삼식 폭력 오페라의 서막이었다.

<페이스 오프>의 초반 장면은 원래 존 트라볼타가 비행기 꼬리 부분에 휘말려 들어가는 것으로 찍을 예정이었다. "그건 뭔가 미진했다. 더 강한 게 필요했다. '이봐, 엔진을 날려버리면 어떨까?'라고 나는 말했다." 제작자는 절망에 빠진 듯한 표정이었다. "그렇게 하려면 4일은 더 걸릴텐데."라고 그는 난색을 표명했다.

홍콩에서처럼 오우삼은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고 우겼고 반나절만에 찍을 수 있다고 장담했다. 바로 그 때가 오우삼이 헐리우드에 안착한 순간이었다. 초긴장 상태로 작업에 돌입해 반나절만에 폭발 장면을 마친 스탭들은 마침내 헐리우드의 스펙타클 기술 보다 오우삼, 존 우의 머릿속에 있는 그림이 더 뛰어난 것임을 인정했다.

그 장면에서 오우삼이 이긴 것은 또 있다. 인질이 타고 있는 비행기에 잠입한 FBI 여자 수사관은 총격전 와중에 절명한다. 헐리우드에선 영화 시작 10분 안에 여성이 죽는 묘사를 집어넣는 것이 금기였다. 스튜디오는 그 장면을 빼려 했지만 오우삼은 강력하게 고집을 부려 그 장면을 살려냈다. <하드 타켓>과 <브로큰 애로우>와는 달리 <페이스 오프>는 오우삼 팬을 즐겁게 할만한, 그리고 처음에 헐리우드 영화관계자들을 매혹시켰던 매력으로 충만하다.

정체성의 충돌과 교환이라는 주제는 이 영화가 그저 <첩혈쌍웅>의 변주일 뿐이라는 것을 가리키지만, 그렇다고 매력이 반감되는 것은 아니다. <페이스 오프>는 향수에 차서 오우삼의 홍콩 영화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달콤한 액션 장면 안무와 편집, 감상적으로 마음을 움직이는 캐릭터의 비장미. 비둘기가 나는 성당에서 벌어지는 총격전, '오버 더 레인보우'가 깔리는 가운데 거울을 마주 하고 날아다니는 총알, <브로큰 애로우>가 오우삼 영화라기 보다는 헐리우드 스튜디오 영화였다면 <페이스 오프>는 진정한 오우삼표 헐리우드 영화였다.

부드럽게 소근 소근 말하는 홍콩 신사 오우삼은 헐리우드 액션영화의 흐름을 바꿔놓았다. 오우삼 스타일이 널리 통용되면서 액션 스타 실베스터 스탤론과 아놀드 슈와제네거의 단순하고 과격한 연기는 낡은 것이 됐다. 총알이 오가는 폭력 장면을 오우삼은 발레처럼 찍는다.

실제로 사석에서 만난 오우삼은 조용하고 신중하며 긴장 때문에 흐르는 땀을 어쩌지 못하는, 매우 여성적인 영혼을 지닌 감독이다. 그렇게 섬세한 태도로 그는 모든 액션 시퀀스를 뮤지컬을 찍듯이 음악에 맞춰 찍는다. 그는 타고난 데다 꽤 훈련된 음감으로 액션을 찍는 감독이다. 그는 폭력의 전율과 음악의 흥을 기묘하게 조화시키는 장식가다.

헐리우드 스튜디오는 마침내 오우삼이 뭘 원하고 잘 하는지를 알게 됐다. 그것은 오우삼도 마찬가지다. 이제 오우삼은 헐리우드에 반항하는 B급 액션 영화감독 존 우가 아니라 헐리우드의 취향에 자기 개성을 맞추는 대작 액션 감독 존 우다. 그의 영화에 배경에 늘 깔려 있던 우정, 가족, 배신, 애국심, 인생의 전투라는 주제는 사실 말로 옮겨놓으면 늘 시시하고 상투적인 것이다.

그는 그런 시시한 설정을 바로크적인 과잉 폭력묘사의 기교로 돌파했다. <미션 임파서블 2>는 근본적으로 홍콩 시절의 영화를 변주했던 <페이스 오프>와는 달리 오우삼이 헐리우드에서 만들 영화의 방향, 기존 감성을 거스르는 대담한 것이 아니라 달콤한 것으로 바뀔 오우삼의 과잉 기교 기착지를 암시하고 있다.

<김영진(hawks@film2.co.kr)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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