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맨칼럼]임상원/'개인정보 보호' 심층 보도를

  • 입력 2000년 6월 11일 19시 38분


‘미국 국방부 기밀문서(The Pentagon Papers)’라는 베트남전에 대한 미국 정부의 정책 결정 과정을 담은 극비 문서가 1971년 6월 뉴욕타임스에 의해 공개됐을 때 미국인들이 가장 분노한 것은 그들 정부의 ‘기만성’이었다. 그동안 전쟁터인 베트남에서 워싱턴으로 보내온 허위 보고서, 1급 기밀 정보로 분류된 정부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주도면밀하게 만들어진 공식 발표문에 담긴 거짓말들, 이들을 ‘국방부 기밀문서’는 폭로하였고 이에 대해 미국인들은 분노했다.

사실 역사가 시작된 이래 항상 기만은 정치에 있어서 긍정적인 수단으로 여겨져 왔다. 진실은 정치적으로 결코 중요시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기만성에 대해 항상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워터게이트사건이 그랬고 프랑스 대혁명에서도 대중을 가장 분노케 한 것은 빵이 아니라 지배자의 기만이었다.

기만하는 자는 원래 신문을 싫어한다. 왜냐하면 신문이란 무엇을 밖으로 드러내는 공개장이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우리가 자발적으로 드러내고 대중에 공개할 때 그것은 도덕적으로 자신이 있을 때이다. 그렇기 때문에 악(惡)은 공개장을 기피한다. 도덕적인 것이란 이렇게 보여주기에 적합한 것이다. 신문은 이런 의미에서 그 자체가 도덕적인 존재이다. 신문이 하는 일은 국민의 삶과 관련된 문제를 공개장으로 끌어내 감사(監査)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어떤 정책이나 결정을 승인하고 비판하는 것이다.

5일 동아일보가 특종 보도한 동아건설의 정치자금 사건은 1억원 수수자를 제외하고는 명단이 모두 공개 보도되는 등 철저한 심층 보도의 형식을 취한 기사였다. 그래도 아직 신문의 사회적 중요성이 줄지 않고 있는 것은 이와 같은 끈질기고 심층적인 기사 덕분이다.

정부의 동강댐 건설 백지화는 환경 운동 단체는 물론, 전국민의 호응을 얻었다. 그러나 동강댐 백지화가 모든 것을 원래의 상태로 돌려놓을 수는 없다. 9일자 A29면 ‘집중 추적-오늘의 이슈’에서 동강댐 백지화 이후 지역 주민이 떠안게 된 피해와 환경 파괴 실상을 상세하게 보도한 것은 백지화 이후 자칫 여론에서 소외될 수 있는 문제를 잘 지적한 기사였다.

공적인 문제의 공개성은 추구해야 할 우리의 덕목이다. 그러나 동시에 사생활의 비밀은 보호돼야 한다. 5일자 D1면 정보화사회에서의 개인 정보 보호 관련 기사인 ‘노출된 나 언제 무슨 일이…’ 기사는 중요한 주제이었다. 그러나 그 내용의 심층성이 떨어졌다. 개인 정보의 노출 문제는 우리 사회의 경우 심각하다 못해 거의 절망적이다. 모든 국민이 주민등록번호로 숫자화된 마당에 이를 조금이라도 이상하게 여겨 이의를 제기하는 일도 없고 또 마구 자신의 주민등록번호를 써대는 우리들이다. 인권이라는 차원에서 개인 정보 보호 문제를 동아일보 같은 신문이 철저하게 다뤄 주었으면 한다.

임상원(고려대 교수·신문방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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