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황호택/다섯 살 갑부

  • 입력 2000년 6월 7일 19시 27분


미국 월스트리트의 증권맨들은 자녀에게 생일선물로 주식을 주는 사람들이 많다. 생일 케이크의 촛불을 끈 자녀에게 전자 장난감 가격과 비슷한 정도의 주식이 담긴 통장을 준다. 자녀에게 경제 공부를 시키기 위해서다. 예를 들어 마이크로소프트 주식을 선물받은 자녀는 이 회사의 기업 내용과 주가 흐름에 관심을 갖게 된다. 주식 생일선물을 통해 자본주의 꽃이라는 증권시장과 주식에 대해 자연스럽게 눈뜰 수 있어 닌텐도 게임기보다도 값진 선물이 될 수 있다.

▷지난해 주가 급등으로 떼돈을 번 벤처기업의 대주주들이 자녀에게 주식을 증여해 미성년 코스닥 갑부가 많이 생겨났다. 평가금액 21억원 상당의 주식을 보유한 다섯 살 갑부가 나타났고 150억원 어치의 주식을 보유한 미성년 형제도 있다. 자녀에게 경제 공부를 시키기 위해 이렇게 거액의 주식을 증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인격이 충분히 성숙되기 전에 땀 한방울 안 흘리고 거액의 불로소득이 생기면 인생 공부를 그르칠 수 있다. 정말 물려줘야 할 것은 막대한 시세차익이 아니라 신기술에 뛰어드는 벤처기업인의 도전 정신이다.

▷비상장 벤처기업 주식을 증여할 때 액면가 기준으로 세금을 냈는데 상장 또는 등록 후에는 주가가 수십배로 폭등해 이런 일이 가능했다. 비단 벤처만의 문제는 아니다. 삼성 SDS도 이건희회장의 장남 이재용씨에게 사모신주인수권부 사채발행을 통해 주식을 헐값에 넘겨주었다가 올해 초 주주총회에서 참여연대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비상장 주식 증여를 이용한 편법 상속은 올해 초 상속세 및 증여세법이 개정돼 불가능해졌다. 친족에게 비상장 주식을 증여한 뒤 3년 이내에 상장해 시세차익을 얻었을 때는 증여세를 다시 내야 한다.

▷이번 일로 벤처 기업인 전체의 도덕성을 도매값에 매도해서는 곤란하다. 돈 문제에서 기업인들에게 우리사회 평균 이상의 도덕성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작년에 코스닥 시장에 과대한 거품이 생겨 벤처기업들이 땅 짚고 헤엄치기 식으로 돈을 끌어 모았고 미처 제도가 따라가지 못해 생겨난 일이다. 제때 법의 구멍을 메우고 시장에 과도한 거품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황호택<논설위원>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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