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리포트]배종태/산학협동의 유토피아

  • 입력 2000년 5월 7일 21시 26분


지난해 10월27일 실리콘밸리 지역의 유력 신문들은 짐 클라크가 스탠퍼드대에 1억5000만달러(약 1650억원)를 기부했다는 기사를 일제히 실었다. 짐 클라크는 이 대학 교수 출신으로 실리콘그래픽스와 넷스케이프를 창업해 큰 성공을 거둔 전설적인 기업가. 금액에서 미국 역대 기부금 가운데 최고를 기록했던 이 기부금은 생명공학 연구에 쓰이게 된다. 짐 클라크는 “교수로서 좋은 연구를 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했던 스탠퍼드대에 진 빚을 갚기 위해, 또 스탠퍼드대가 정보기술(IT)에 이어 생명공학 부문에서도 선도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하는 마음에서 기부금을 전한다”고 말했다.

▼교수들 경영자로 활약▼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강의실. 40여명의 학생들이 한 기업의 최근 케이스를 놓고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다. 담당교수는 토론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도록 이끌어주는 역할만 할 뿐 이론적인 내용은 가르치지 않는다. 이론적인 자료들은 학기초에 미리 배포하고 학생들은 매주 500여 페이지에 이르는 내용을 읽어야 수업에 참여할 수 있다.

강의시간 마지막 30분은 그날 케이스로 다뤄진 기업의 최고경영자가 직접 학생들의 질문에 답하는 시간이다. 방금 토론한 케이스의 주인공이 강단에 서는 것. 이론과 현실, 또 대학과 산업체 사이의 벽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인텔의 앤디 그로브 회장은 매년 한 학기씩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에서 정보산업 전략에 대해 강의한다.

세계 주요 도시가 큰 강을 끼고 있듯 세계적인 지식 집약단지에는 반드시 세계적인 대학이 있다. 대학은 새로운 지식의 원천이자 우수한 인력의 산실이기 때문이다. 1891년 개교한 스탠퍼드대는 ‘실리콘밸리의 아버지’로 불리는 프레드릭 터먼 교수의 비전과 노력 덕분에 실리콘밸리의 모태로 자리잡았다. 터먼 교수의 권유로 1939년 휴렛과 팩커드가 휴렛팩커드를 창업했고 1953년에는 터먼 교수의 주도로 스탠퍼드 산업단지가 만들어졌다.

▼벤처기업 2000개 배출▼

스탠퍼드대는 지금 15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포함한 1600여명의 교수, 1만4000여명의 학생들, 연간 운영예산 14억4000만달러(약 1조7000억원)의 세계 최고 대학으로 발전했다. 운영예산에서 등록금의 비중은 불과 20%다. 40%는 정부에서 수탁받은 연구 용역으로, 나머지는 기부금과 그 운영 수익금으로 충당된다. 야후 선마이크로시스템스 등 스탠퍼드에서 배출한 벤처기업은 이미 2000개를 넘었다. 매년 발표되는 대학랭킹에서도 경영학 법학 공학 등 전부문에서 동부의 유수한 대학들과 수위를 다투고 있다.

▼신기술-우수인력 교류▼

스탠퍼드대가 세계 최고의 대학으로 발전한 이유는 실리콘 밸리의 중심에 있다는 지역적 이점을 최대한 활용했기 때문이다. 많은 교수가 기업체의 경영자로, 또 사외이사로 경영 활동에 참여한다. 직접 벤처기업을 창업했던 교수 가운데 절반은 다시 대학으로 돌아온다. 짐 클라크처럼 기업가로 성공한 교수도 많다. 학생들도 책이나 교수로부터 배우는 것만큼 실리콘밸리에서 산업체의 지도자들로부터 배운다.

우리나라는 산학 협동을 연구 부문에서만 강조해왔지만 교육 부문에서도 활발한 산학 협동이 필요하다. 성공한 벤처기업 경영자와 기술자들이 대학의 강단에 자주 서서 그들의 경험을 학생들과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 궁극적으로는 산업계의 많은 지도자들이 교수로 나설 수 있도록 대학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배종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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