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음란사이트/"나도 모른새 포르노 주인공됐어요"

  • 입력 2000년 4월 23일 20시 00분


국내에서도 음란사이트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검찰은 23일 ‘정보의 바다’ 인터넷을 ‘음란의 바다’로 오염시켜온 컴퓨터공학도, 서울대 졸업생, 유명 광고대행사 직원 등 10명을 적발했다. 이들은 인터넷 음란사이트를 운영하거나 E메일을 통해 음란물을 사고 판 혐의를 받고 있다.

서울지검 컴퓨터수사부(부장검사 정진섭·鄭陳燮)는 23일 이병희씨(20·영남대 컴퓨터공학과 1년 휴학 중)와 김수영씨(32·코래드 직원) 등 4명을 전기통신기본법 위반 혐의로 구속하고 서울대 졸업생 홍영일씨(30)와 윤영조씨(29)를 같은 혐의로 지명 수배했다.

검찰은 이씨의 음란사이트 운영을 도와준 혐의로 김모씨(23) 등 2명을 불구속입건하고 E메일로 음란CD를 판매한 혐의를 받고 있는 노모군(15) 등 고교생 2명은 나이와 초범인 점을 감안해 입건하지 않았다. 검찰은 ‘울트라엑스’ ‘여고색담(女高色談)’ ‘케이걸즈’ 등 문제의 음란 사이트 5개를 폐쇄했다.

▼'음란의 바다'에 빠진 사람들▼

이병희씨는 과 수석으로 대학에 합격한 촉망받는 컴퓨터공학도. 그러나 그는 휴학하고 자취방에서 음란사이트 ‘울트라엑스’를 운영하며 이 사이트에 120개의 외국 음란사이트를 링크해준 대가로 지난해 4700만원을 벌었다.

외국의 유료 사이트들은 이씨 같은 국내 음란사이트 운영자에게 ‘배너광고’를 2회 클릭하면 3∼5센트를 주거나 회원을 모아주면 가입비의 20∼25%를 지급하며 영업을 확장하고 있다.

이씨는 하반신 장애인이면서 뛰어난 컴퓨터 실력을 갖춘 주모씨(불구속입건) 등을 끌어들여 ‘기가엑스엑스’ ‘케이걸즈’라는 유료 음란사이트를 개설해 ‘사업’을 확장했고 주씨는 이씨에게 1500만원을 받고 주로 몰래카메라 동영상 수집을 담당했다고 검찰은 밝혔다.

구속된 김수영씨는 유명 광고대행사 직원으로 일하면서 근친상간, 가학적 성행위 등의 내용을 담은 음란소설(이른바 ‘야설’) 사이트인 ‘여고색담’을 운영한 혐의다. 김씨는 집에서 홈페이지 자료를 정리하고 회사에서는 ‘고객’의 E메일을 관리하느라 정상적인 직장생활을 하지 못했다고 검찰은 밝혔다.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 출신인 홍영일 윤영조씨는 강원 속초시 설악동의 한 아파트에 살면서 음란사이트 ‘소라의 가이드’ ‘트위스트 김’ 등을 운영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홍씨와 윤씨는 호주로 달아나 구체적인 범행동기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며 “음란사이트 운영자들은 대부분 인터넷 음란물을 보는 것을 즐기다가 음란물 사이트를 직접 만들게 되고, 결국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등진 범법자로 전락한다”고 말했다.

▼'사이버테러'의 공포▼

이번에 적발된 음란사이트 ‘케이걸즈’는 몰래카메라 음란동영상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유료 사이트. 30대 남자 A씨는 1월 이 사이트에서 옛 애인과 자신의 성행위를 담은 동영상을 본 뒤 두려움에 떠는 ‘폐인’이 돼 버렸다.

연애시절 술김에 장난으로 찍은 비디오테이프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유통돼 결국 광활한 ‘인터넷세상’으로까지 흘러 들어간 것. A씨는 최근 검찰에 E메일을 보내 “인터넷 사용자가 1000만명을 넘는 현실에서 그 동영상의 주인공이 ‘나’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나와 그 옛 애인의 인생은 끝장”이라며 도움을 요청했다.

A씨는 “한 개인의 철없는 실수를 돈벌이에 마구 이용하는 음란물 사이트업자를 방치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용기를 내 신고하게 됐다”고 밝혔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파문을 일으켰던 ‘O양 비디오’의 동영상을 본 인터넷 이용자는 전체의 60%인 약 600만명.

인터넷 전문가들은 “‘O양’은 사이버테러의 대표적 희생자”라며 “사용이 편리한 캠코더가 보편화된데다 사이버공간에서는 무한복제가 가능해 누가 언제 어떻게 ‘O양’ 같은 비극을 당할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국내 음란사이트 운영자들은 음란동영상 여주인공이 국내 유명 연예인과 조금만 닮아도 ‘인기연예인 ○○○의 몰래카메라’라는 제목을 붙여 공공연하게 명예훼손을 자행했다고 검찰은 밝혔다.

▼시급한 법률정비▼

사이버공간에 유통되는 음란물의 분량은 매년 60만건 이상이며 뉴스 자료 사진의 80% 이상이 음란물이라는 것이 정보통신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지난해 국내의 한 연구소가 중고생 1054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인터넷 등을 통해 음란정보나 포르노정보를 이용한 경험이 있는 학생이 77.1%(710명)에 달했다.

게다가 ‘정보의 바다’를 오염시키는 음란사이트 업자의 범행은 점차 국제화 지능화되고 있다. 이번에 적발된 업자들도 음란사이트의 IP주소 추적을 피하기 하기 위해 가공의 주소를 만들어 마치 캐나다에 서버가 있는 것처럼 조작해 놓았다고 검찰은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음란사이트를 단속하는 전기통신기본법의 최고 형량이 징역 1년으로 음란CD 제조사범의 징역 5년보다도 낮다”며 “암호나 보안체계 등 기술적 대안을 찾는 한편 인터넷 현실에 맞는 법률 정비가 시급하다”고 밝혔다.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