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디거’의 작가 박영철(34)은 문화관광부가 선정하는 ‘오늘의 우리만화’의 2000년도 첫 수상자. 학원 폭력물이 넘쳐나는 만화시장에서 세밀한 붓터치와 느린 작업 속도 때문에 쉽게 시도되지 않는 동물 만화를 고집스럽게 그리고 있는 몇 안되는 작가다.
박씨가 고등학교 졸업 후 만화계에 입문한 지 올해로 16년째. 기나긴 문하생 생활을 마치고 1996년 ‘제1회 운평만화대상’에서 입선하면서 비로소 자신의 이름으로 된 만화를 발표할수 있었다. 이후 2년의 고된 작업 끝에 그려낸 작품이 바로 ‘디거’다.
“일본문화 개방이 되기 전인 1993년 무작정 일본으로 건너갔죠. 한 해 4000종이 넘게 출판된다는 일본 만화시장에도 동물만화를 그리는 작가는 거의 없더라구요. 희소성의 가치가 있는 이 분야에서 최고가 되겠다고 마음먹게 됐습니다.”
‘디거’는 숲속 절벽아래 이름모를 동굴에서 태어난다. 환각성분이 있는 풀이 자라는 이곳에선 유전자변이로 인해 종(種)이 다른 동물들도 자연스럽게 짝짓기를 할 수 있다. 박씨가 그리는 동물만화는 리얼리즘에 입각한 다큐멘터리라기 보다는 이렇듯 상상 속의 시공간을 배경으로 한 환타지 만화다.
“동물이 등장하지만 결국 인간의 마음을 그리고 싶었어요. 포악성과 순수성을 동시에 지 닌 ‘디거’가 겪는 심리적 갈등은 인간의 그것과 다름없지요. 디거는 호랑이지만 자기보다 약한 동물을 위해서 스스로 희생하기도 합니다.”
박씨는 요즘 새 작품으로 ‘대박’이라는 환경만화도 그리고 있다.
<전승훈기자>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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