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나사 풀린 것 아닌가

  • 입력 2000년 4월 9일 20시 21분


지금 우리 사회는 정상이 아니다. 혼탁한 선거운동은 말할 것도 없고 경제위기논란에다 구제역(口蹄疫)이니 강원도 고성 산불이니 해서 어수선한 분위기에 치안마저 믿을 수 없는 ‘총체적 불안’ 상태에 놓여있다. 게다가 장관들을 필두로 한 공직사회는 중요한 결정을 선거후로 미루는 등 나사가 풀려도 이만저만 풀린 게 아니다. 이러다 무슨 큰일이라도 생기면 어떻게 하나 하는 막연한 불안감을 떨칠 수 없다.

사회불안 요인이 많은 선거철일수록 정부 각 분야는 기본책무와 원칙에 더욱 충실해 국민을 불안에 빠뜨리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주요산업체 노조들의 집단행동과 의사 약사단체 등 이익단체간의 갈등 대립도 사회불안을 가중시킨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골치아픈 현안은 대충 미봉하거나 선거후로 미뤄놓고 보는 행정기관의 ‘열중쉬어’ 자세가 문제다.

구제역 파동만 해도 그렇다. 해당 지방자치단체들이 초동방역을 게을리했다고 해서 중앙정부는 예산지원을 줄이겠다는 등 엄포를 놓았다. 농림부 등 중앙부처는 과연 그 책임에서 완전히 발을 뺄 수 있는지 의문이다. 결정뿐만 아니라 책임도 미루는 공직사회의 행태가 큰 문제다.

또한 치안유지는 두말할 나위 없이 국가의 가장 기초적인 의무다. 치안의 확보 없이 국민의 일상생활이 안정될 수 없다. ㈜효성무역PG 고문 문도상씨 부부에 이어 DCM철강 정진태 회장 부부 및 파출부 피살사건은 선거철 치안을 비웃는 대표적 강력사건이다. 이런 흉악범죄의 발생을 미리 막기가 어렵다 하더라도 경찰이 선거에만 지나치게 신경을 쓰고 민생치안을 소홀히 한 측면은 없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범인들을 하루라도 빨리, 그리고 반드시 검거해 국민의 불안감을 씻어줘야 한다.

우리 사회는 선거철만 되면 오직 그 한가지에만 매달리는 좋지 않은 습성이 있다. 공직사회는 특히 더 그렇다. 선거결과에 따라 정부의 정책이 바뀔 수도 있기 때문에 공무원들이 선거에 관심을 쏟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해도 선거 때문에 행정차질이나 공백현상이 있어서는 안된다. 특히 국민생활과 직결되는 현안들은 차질없이 처리되어야 한다. 선거는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한 수단일 뿐이고 그 자체가 목적일 수는 없다.

총선은 이제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남은 기간은 물론 선거가 끝난 뒤에도 나사를 바짝 죄어 국가의 기본기능에 소홀한 구석이 없도록 해야 한다. 선거는 선거이고 민생은 민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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