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차병직/'法' 때리는 선거운동 엄단을

  • 입력 2000년 3월 13일 19시 25분


▼선관위직원 폭행까지▼

한때는 정치적 무관심이 정치적 과제였다. 부패하고 부정직하고 혼란스러운 우리 정치현실의 필연적인 결과처럼, 상징처럼 거론되곤 했다. 최근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16대 총선을 앞두고 더 이상 정치적 무관심이 이야기되지 않는다. 오히려 열띤 정치적 관심의 방향에 대해서 서로 시선이 뜨겁다.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번 총선의 투표율은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투표를 하겠다고 응답한 유권자가 70%를 웃돈다. 청년과 대학생들은 20, 30대의 투표율 높이기 운동을 전개할 조짐이다. 선거일에 실제로 참여하는 사람은 더 많아질 수 있다. 총선연대가 불러일으킨 열기는 국면을 정치적 무관심에서 정치적 관심으로 돌려놓았다. 그 열기는 투표에 대한 단순한 의욕이 아니라 바른 선거의 실현을 통한 깨끗한 정치의 실천이란 꿈을 향한 열정이다. 불가능할 것으로 비쳤던 희망의 정치, 그 좋은 일을 이루는 데 내가 직접 참여한다는 인식이 원동력이 됐다. 때문에 열기는 선거혁명으로까지 이어지리라는 기대를 가지게 했다.

그러나 돌아가는 정치판은 분위기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렇듯 고조되고 성숙한 정치적 여건을 시민들이 조성하고 있음에도 각 정당과 후보자들은 당선이라는 목적에만 혈안이 돼 연일 찬물을 끼얹는 행태를 연출한다. 낙천운동에 대해서는 부패한 정치인의 인권까지 들먹이더니 공천부적격자 명단의 일부만 이용하고 대부분은 무시하는 공천을 마쳤고, 낙천자들의 이합집산은 4당 체제를 구축해 지역감정으로 무장을 한 뒤, 전통을 답습해 본격적인 표 사들이기에 들어갔다.

먹자판이 벌어져 한 후보자가 뿌리는 식비만 하루 수백만원이고 지난 15대 총선에 비해 선거법위반으로 적발된 건수가 3배에 이른다. 더 심각한 것은 갈 데까지 간다는 식의 불법선거운동이다. 선거운동원들이 선관위 단속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폭력으로 공무집행을 방해하고 있다는 소식은 충격적이다.

마산에서는 명함 불법배포를 제지하는 선관위 직원에게 폭언과 발길질이 가해졌다. 논산에서는 불법운동의 증거를 확보하려던 단속원의 신분증과 녹음기를 탈취했다. 공권력은 여지없이 짓밟히고, 그렇다면 불법선거운동은 누가 어떻게 단속할 것이냐는 절망적 우려가 앞을 가로막는다.

일각에서는 후보자와 선거운동원들의 무분별한 저항의 책임을 총선연대에 떠넘기려 한다. 중앙선관위는 불법선거운동원들의 법 무시 풍조 원인으로 총선연대의 불복종운동을 들고 있다. 어느 언론은 총선연대의 낙선운동을 제대로 저지하지 못하는 선관위에 선거관리 능력이 있겠느냐고 의문을 제기한다.

법과 공권력을 무시하는 행동은 선거운동이 아니라도 엄단해야 하지만, 그러한 불법선거운동과 총선연대운동을 동일시하는 것은 다소 엉뚱하다. 총선연대 운동의 원칙은 첫번째가 적법의 범위 안에서이다. 운동의 장애가 되는 불합리한 법은 개정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래도 불가피한 경우에 불복종운동을 전개한다. 그 결정 과정에는 자문변호인단이 참여해 신중을 기한다. 하지만 불법선거운동은 원칙이 없는 무법자적 행동에 지나지 않는다.

▼필요하면 시민들 감시 나설때▼

불복종운동은 실정법의 존재와 유효성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처벌을 감수한다. 따라서 내가 먼저 감옥에 들어가겠다고 나선다. 반면 불법선거운동은 득표만이 목적이고, 책임은 아무도 지려하지 않고 꽁무니를 뺀다. 불복종운동은 정치문화의 수준향상이란 공익적 동기에서 출발하기에, 사리사욕에만 눈먼 불법선거운동처럼 공권력의 근저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공권력의 정당성을 확보해 주고 건전한 권위를 세워줄 수 있다.

지금 벌어지는 선거운동원들의 무분별한 행동은 엄격히 처리돼야 한다. 만약 선관위의 정상적 활동으로 역부족이라면 적절한 지원이 있어야 한다. 그래도 모자란다면 총선연대가 불법선거운동의 감시운동을 전개할 수 있다. 젊은이들이 불법현장을 직접 목격하고 법정에서 증언할 수 있다. 불법선거운동과 공명선거운동의 한바탕 전쟁이 이땅에서 불가피하게 벌어질 전망이다.

차병직(변호사·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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