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라이프 마이스타일]박민수/중고품 고쳐팔며 살기

  • 입력 2000년 2월 15일 19시 33분


▼박민수씨 (32·티샷닷콤 사장)▼

T셔츠 판매업체 티샷닷콤(www.t-shot.com)의 박민수사장(32)은 매일 오전 7시 출근을 하면 1시간남짓 신문을 본다. 보는 순서는 동아일보 조선일보 벼룩시장 교차로. 생활정보지를 종합일간지와 같은 ‘반열’에 두는 것은 그가 중고품 거래에 굉장한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아버지는 학용품값 점심값 등 꼭 필요한 경우에만 그에게 돈을 줬다. 아무리 조립식 장난감과 TV게임기를 갖고 싶어해도 소용없었다. 군것질을 하지 않고 학용품은 보다 싼 것으로, 참고서는 중고책방에서 사면서 돈을 모았지만 모자랐다. TV게임을 갖고 놀다 싫증을 내는 친구들로부터 10만원 짜리 게임기는 3만원에, 5000원에 산 장난감은 2000원에 샀다.

갖고 놀다보면 그도 싫증이 났다. 3만원에 산 게임기는 2만원에, 2000원에 산 장난감은 1000원에 되팔았다. 고등학교 졸업때까지 그렇게 살았다.

군복무를 마친 1992년 말, 대학 2학년 때 휴학을 하고 창업을 했다. 충북 청주시 충북대 앞에서 ‘고려전산’이라는 6평짜리 조립PC 판매점을 열었다. 서울 용산전자상가에서 부품을 구해다가 완제품을 만들어 팔아 2년동안 1억원의 순익을 남겼다.

사실 그는 물건을 구입가격보다 비싸게 파는 데 관심이 있다. ‘미다스의 손’은 아니지만 자신의 손만 거치면 중고품 값도 되레 비싸지는게 흥미롭다. 중고품을 만나면 그는 힘이 솟는다. 오냐, 내가 제 가치를 받아주마.

지난 7년간 그는 차를 30여번 바꾸었다. 1995년부터 퇴근후면 서울 장안평 중고차시장을 찾아 중고차를 몰아보고 값을 알아본 뒤 PC통신을 통해 친분을 만든 중고차 매매업자와 그날 보고 온 차에 대해 토론하는 게 일상이 됐다. 주말에도 중고차시장에서 살다시피했다. 중고차 매매업자들과 자연히 안면이 생겼다. 덕분에 그는 차를 일반 흥정가보다 30∼40% 싸게 살 수 있게 됐다.

최근에는 1993년식 소나타Ⅱ를 180만원에 사서 엔진과 실내외장을 손본 뒤 3개월정도 타다가 350만원에 팔았다. 돈을 남기지는 못했지만 잃지는 않았다. 이런식으로 그동안 티코 르망 에스페로 소나타 캐피탈 콩코드 프라이드 프린스 등 30여대의 차를 초기투자비용만으로 갈아 타 왔다.

대우 프린스는 그가 6번이나 사고 팔기를 반복한 ‘명차’다. 후륜구동의 안정적인 주행성능과 넘치는 파워에 매료됐다. 1998년 5월 수리비만 400만원이 나온 대형사고에서 박사장은 찰과상만 입고 무사했다. 이후로 프린스 ‘팬’이 됐다.

PC도 마찬가지. 용산전자상가에서 부품만 구입, 컴퓨터를 조립해서 새 기종이 나올 때까지 서너달 쓰다가 판다. 보통 100만원에 팔리는 PC는 직접 부품을 사서 만들면 40만∼50만원이 드는 데 이를 50만원에 되파는 것이다. 그의 집에는 7살난 아들이 쓰는 오락용 펜티엄Ⅲ, 아내를 위한 펜티엄 셀러론, 리눅스 연구용 컴퓨터 2대 등 모두 4대의 PC가 있는데 모두 이 같은 방법으로 만들어 쓰고 있으며 곧 팔릴 운명이다.

생활정보지에서 그는 실물경제의 흐름과 소비자들의 주머니사정을 실시간으로 본다. 정부에서 발표하는 각종 경제지수만 참고하면 소비자편에서 멀어지기 쉽다. 조사시점의 지수가 실제 경기에 반영되기 까지의 시간차 때문에 소비자들의 욕구를 재빠르게 반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벤처거품과 맞물려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벤처벨리 등 벤처기업이 몰려 있는 곳의 물가가 집중적으로 뛰고 있는 게 눈에 띈다. 사무실 임대료, 부근 상가의 매매가, 하다못해 식당에서 파는 김치찌개의 값까지.

자본금 5억원으로 1999년 12월 문을 연 티샷닷컴의 올해 예상매출은 70억원. PC판매점 코데라 LG미디어 채널아이 등 6개 업체를 돌아다니며 꾸준히 자신의 가치를 올려 온 박사장은 “‘프로’의 가치도 중고품과 닮은 면이 많다”고 말한다.

나이가 들수록 값어치가 떨어져 나중에 비빌 언덕은 인맥밖에 없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끊임없는 노력과 탄탄한 기본기로 갈수록 가치가 올라가는 프로도 있다. “어떤 중고품이 될지는 스스로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그는 자신이 ‘훌륭한 중고품’으로 살고 있다고 자부한다. “말하자면 프린스같다고나 할까요?”

<나성엽기자> news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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