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 입력 2000년 2월 8일 20시 19분


외국의 여성지도자들이 정계에 진출해 맹활약을 하고 있다는 보도가 지구촌 각국에서 잇따라 나오고 있다. 며칠 전 일본 최초의 여성지사가 당선됐다는 소식에 이어 핀란드에 첫 여성대통령이 탄생했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이런 소식들이 꽤 놀랍기도 하고 한편으로 낯설게 들리는 것은 우리의 현실과 너무 대조되기 때문이다.

물론 여성들의 사회진출은 나라마다 고유한 전통과 문화에 따라, 혹은 여성을 둘러싼 환경과 여건에 따라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여성의 정계진출 사례 몇가지만을 놓고 그 사회의 남녀 평등과 성숙도를 판단하는 것은 성급한 일일 수도 있다. 우리 사회는 최근 들어 각 분야에서 여성 진출이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정치는 여성 진출이 부진한 대표적인 분야라는 데 문제가 있다.

우리나라는 국회의원 299명 가운데 여성의원이 11명에 불과하다. 그나마 지역구에서 당선된 의원은 3명이며 나머지는 전국구의원이다. 행정부는 또 어떤가. 부(部)나 처(處)자가 들어가는 정부기관에서 여성 장관은 한 명밖에 되지 않고 여성 차관은 한 명도 없다. 엊그제 이번 총선에 출마할 여성의원들과 후보자들은 정당별로 모임을 갖고 공천과정에서 ‘여성 몫’을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공교롭게도 일본과 핀란드에서 여성지도자의 당선 소식이 전해진 날이었다. 기존 정치인들은 이에 대해 대부분 무관심한 표정이었다. 지난주에는 경북 청송-영덕 선거구의 민주당 출마예정자였던 한 젊은 여성후보가 갑작스럽게 조직책을 박탈당하는 일이 있었다. 득표력이 부족하다는 게 중앙당측이 밝힌 교체이유였지만 당사자는 여성후보에 대한 편견이 작용한 결과라며 반발하고 있다.

남성정치인들은 말한다. 현실적으로 여성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높지 않기 때문에 남성을 내세울 수밖에 없다고. 공천을 하려고 해도 마땅한 여성후보가 없다고도 말한다. 승리를 위한 치열한 선거전에서 당선위주 전략을 탓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21세기 정치는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외국의 예에서 보듯이 여성정치인들은 원칙에 강하고 파벌과 인맥을 형성하지 않는 등 여러 가지 장점을 인정받고 있다. 외국에서 여성지도자의 약진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여성 정치지망생 중에 ‘재목’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기존 정치권의 높은 벽이 그동안 여성 진출을 허용하지 않은 탓도 있다. 또 여성에 대한 편견이 아직도 높게 쌓여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21세기 첫 총선인 이번 선거에서는 일단 그 벽을 허물어 여성들에게 도 남성 못지않은 능력을 발휘할 길을 터주는 게 순리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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