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직장내 사이버주식거래 '숨바꼭질'

  • 입력 2000년 2월 7일 19시 48분


삼성전자는 지난달 사내게시판을 통해 “점심시간을 제외한 근무시간에 사내 근거리통신망(LAN)을 통해 사이버주식 사이트에 접근하는 사원들 명단을 파악해 해당부서장에게 통보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1월 한달 간은 사원들의 IP주소별로 사내 LAN을 통해 주식투자 프로그램에 접속한 건수를 점검하는 ‘자숙기간’을 거쳐 개선될 기미가 안보이면 이달부터는 본격 단속에 나서겠다고 밝힌 것.

LG카드와 서울보증보험 등은 아예 LAN에서 주식투자 사이트에 접근하는 것 자체를 차단하고 있다. 중앙전산실 메인컴퓨터에 비업무용 사이트 차단 프로그램을 설치해 특정 사이트에 접속하는 것을 원천 봉쇄하는 ‘방화벽’을 설치해 놓았다.

사이버주식투자 열풍이 불면서 직장 내에서 근무 중 주식투자에 몰두하는 행위를 막으려는 회사와 이를 교묘하게 피해 주식투자에 열을 올리는 직장인들간에 ‘쫓고 쫓기는’ 숨바꼭질이 한창이다.

▼"업무는 3시이후"▼

증권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우리나라 사이버주식거래약정 액수는 107조7632억원으로 전체 주식약정액(267조9372억원)의 40%를 처음으로 넘어섰다. 지난해 전체 사이버증권약정 총액은 684조3312억원. 98년 22조4677억원의 30배 이상이다.

이같은 사이버주식 열풍에는 직장인들이 근무중에도 틈틈이 실시간으로 초단타 매매가 단단히 한몫했다.

하지만 이 때문에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업무는 (주식 객장이 문을 닫는) 오후 3시 이후”라는 농담이 생겨날 만큼 근무시간에 주식투자에 몰두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특히 자리마다 데스크톱 컴퓨터가 지급된 관리직 사원들은 컴퓨터작업을 빙자해 사내 LAN을 통해 끊임없이 투자종목의 주가 추이를 살피고 매매주문을 내는 등 주식투자에 빠져 업무에 차질이 생기는 사례도 적지 않다는 것.이 때문에 주가가 급등하면 흥분을 주체 못하고 반대로 주가가 급락하면 낙담해 업무는 뒷전으로 밀리기 일쑤고 주식시장이 요동을 치면 직장 내 주식투자족끼리 삼삼오오 모여 정보를 교환하는 것도 자주 보는 풍경이 됐다.

▼"막아라"▼

경영진은 이런 주식열풍이 만연하자 업무시간 중 주식투자에 매달리지 못하도록 감시에 나서고 있다. 음란물에 새로운 감시항목이 하나 추가된 것.

방식은 불량 사이트에 접속하는 IP주소를 추적해 ‘상습범’을 적발하는 방법과 아예 사내 메인 컴퓨터에 별도의 프로그램을 장착시켜 ‘블랙리스트’ 사이트에 접속하는 것을 차단하는 방법 등 크게 둘로 나뉜다. 전자가 직원들의 자발적 자제를 촉구하는 형태라면 후자는 원천봉쇄형. 최근 기업체들은 원천봉쇄형을 선호한다.

비업무용 사이트 차단 프로그램 전문업체인 택공일의 김영기개발팀장(29)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업체들의 주문이 폭주해 하반기 매출이 상반기에 비해 1000% 증가했다”며 “블랙리스트를 계속 업그레이드해주기 때문에 기업들에 인기가 좋다”고 말했다. ▼"뚫어라"▼

하지만 ‘추적형’도 직원들의 업무시간 사이버활동을 비밀리에 감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소리소문 없이 인기를 얻고 있다.한 방화벽전문업체 임원은 “몇몇 기업들은 직원들이 평소 근무시간에 어떤 사이트를 방문해서 무슨 작업을 하는지를 모니터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은밀히 주문하는 경우가 있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직장인들도 이에 질세라 갖가지 방법을 동원해 주식시장과의 접속을 시도하고 있다.

사내 불이익을 받든 말든 사내 LAN을 이용하는 ‘탱크형’이 있는가 하면 아예 초고속 LAN을 포기하고 저속 전화선으로 접속에 나서는 ‘스텔스파’도 있다.

방화벽이 설치된 직장의 경우에는 ‘블랙리스트’에 오르지 않은 군소 증권사 중 알려지지 않은 사이트를 발굴해 이를 컴퓨터 윈도 화면 귀퉁이에 숨겨두고 주식시세를 틈틈이 점검하면서 거래주문은 전화로 대형증권사를 통하는 ‘잠망경파’도 있다.

또 아예 컴퓨터 단말기를 포기하고 최첨단 단말기를 활용하는 ‘하이테크족’도 있다. 증권사에서 일정금액 이상 투자한 고객들에게 무상으로 제공하는 ‘에어포스트’나 ‘인터넷폰’ 등 휴대용 무선단말기를 이용해 주식시장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받는 것.

네트워크 방화벽이 설치된 한 유통업체의 직원 김모씨(29)는 “요즘은 주가가 하도 급등락 청룡열차를 타고 있어 근무 중에도 주식시세를 10분이 멀다 하고 확인해야 직성이 풀린다”면서 “주가가 안정될 때까지는 사이버 숨바꼭질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권재현기자>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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