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윤락가 4곳 르포]불꺼진 '텍사스'

  • 입력 2000년 1월 16일 20시 03분


경찰이 ‘미성년 매매춘과의 전쟁’을 선포한 지 보름여.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속칭 ‘미아리 텍사스’와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속칭 ‘청량리 588’ 등 서울의 대표적인 윤락가의 밤풍경은 과거와 확 달라졌다. 경찰의 단속이 강화되면서 손님의 발길이 뚝 끊겼고 자진 휴폐업하는 업소도 늘고 있다.

▼실태▼

본보취재팀은 14,15일 이틀동안 미아리 텍사스와 청량리 588을 비롯, 천호동 영등포일대 등 서울의 대표적인 윤락가 4곳을 상대로 달라진 윤락가의 모습을 집중 취재했다.

14일 오후 11시50분경 100여개의 업소가 밀집해있는 청량리 588. 경찰 30여명의 검문이 계속되고 있었고 일대 거리는 손님을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한산했다. 미성년 매매춘을 하다 적발된 업소는 물론 다른 업소들까지 손님이 끊겨 굳게 문이 잠겨 있었다. 30대의 한 포주는 “윤락녀들이 경찰이 무서워 출근을 하지 않는 곳도 여러 곳 있다”며 “이러다가 모두 문닫을 지경”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같은 시간 서울 영등포구 L백화점 맞은 편 골목. 300여m의 거리에 50여개의 윤락업소가 밀집해 있는 이 지역도 ‘개점휴업’상태였다. 10여명의 경찰이 수시로 골목을 순찰해 대부분 가게가 불을 끄고 커튼을 내리고 있었으며 일부 포주들이 삼삼오오 가게 앞에 모여 앞날을 걱정하고 있었다. 한 업소에서는 손님 한명이 다가와 흥정을 벌였으나 경찰이 지나가자 후닥닥 달아났다.

15일 오후 11시경 천호동 423 속칭 ‘천호동 텍사스촌’ 역시 흥청거리던 분위기는 사라지고 오가는 사람없이 한산했다. 한때 180여개의 업소와 윤락녀 1000명에 이를 정도로 불야성을 이뤘지만 이날은 남아있는 65개 업소 중 대부분의 업소에는 검은색 커튼이 쳐져 있었고 굵은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골목길은 쥐죽은 듯이 조용했고 가끔씩 한두명의 행인이 지나다녔지만 이들을 유혹하는 아가씨나 호객꾼들도 보이지 않았다.

미아리텍사스는 타격이 더 심했다. 경찰의 집중적인 단속을 받은 탓으로 260여개의 업소중 100여곳이 폐쇄중이거나 영업을 중단한 상태. 나머지 업소도 김강자(金康子)서울종암경찰서장의 지시에 따라 커튼을 열어놓고 영업을 하고 있었지만 손님은 거의 보이지 않았으며 경찰과 구청직원 8,9명이 수시로 미성년고용여부를 확인하러 순찰을 돌고 있었다.

▼업소 반응▼

포주들은 “우리 스스로 자정노력을 하고 있으니까 이제 단속을 중단해 달라”고 하소연하며 시위를 벌이는 등 감정이 격앙되어 있다.

미아리 텍사스에서 5년째 포주생활을 하고 있는 40대 여성은 “미성년 매매춘을 하는 업소는 이미 철퇴를 맞고 문을 닫았는데도 나머지 업소가 심각한 피해를 보고 있다”며 “경찰이 철수하지 않으면 모두 망할 지경”이라고 말했다.

청량리 588의 경우에도 14일 오후 포주 140여명이 청량리경찰서에 모여 “미성년자를 고용하는 업소는 스스로 신고하겠다”는 자정결의를 하고 경찰의 철수를 요청했다.

그런가 하면 천호동의 포주 40여명은 15일 오후 관할 강동경찰서 1층 로비를 점거하고 항의시위를 벌였다. 서장면담을 요구하며 자정 넘어까지 시위를 계속하던 포주들은 경찰서측이 단속한 업주와 윤락녀들을 윤락행위방지법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하고 돌려보내자 자진해산했다.

30대초반의 한 포주(여)는 “이 지역의 경우 초저녁부터 경찰들이 단속을 나오는데다 불을 켠 상태에서는 영업을 못하게 해 사실상 성인들의 출입도 통제돼 장사를 할 수 없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전망▼

경찰의 미성년 매매춘 전쟁으로 윤락가의 미성년 매매춘은 크게 감소한 상태. 서울 종암경찰서의 한 관계자는 “단속 직전까지만 해도 미아리 텍사스 업소중 미성년을 고용하는 업소는 60∼80%에 달했는데 지금은 거의 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청의 한 관계자는 “미성년 매매춘으로 촉발된 사안이긴 하지만 사실 윤락행위 자체도 불법”이라며 “음성적으로 행해지는 윤락행위에 대해선 내용을 불문하고 강력한 단속을 벌일 방침”이라고 말했다.

경찰의 단속이 본격화하자 ‘영업무대’를 옮기려는 포주들도 눈에 띄고 있다. 청량리의 한 포주는 “단골 손님들도 경찰의 검문 검색 때문에 발길을 딱 끊었다”며 다른 곳으로 장소를 옮길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천호동의 한 포주도 “5년전 1억원의 권리금을 주고 입주했는데 지금은 권리금은 물론 건물 임대료도 제대로 못내고 있는 실정”이라며 “이미 많은 업소들이 파주 용주골 등지로 떠났으며 곧 옮길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단속 일변도의 매매춘 대책에 대한 부작용을 우려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단속의 눈을 피해 주택가나 도심지역으로 진출할 가능성이 있고 단속이 강화될수록 음성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청량리 588의 한 윤락녀(22)는 “매일 경찰의 검문검색을 받으며 출퇴근하는 것도 이제 지겹다”며 “차라리 직장인들이 많이 모이는 여의도나 강남쪽으로 옮기는 게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미아리 텍사스의 한 포주도 “미성년자는 대부분 짐을 싸서 돌려보냈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되겠느냐”며 “다른 윤락업소를 찾을 것이 뻔하다”고 말했다.

<김상훈·권재현·윤상호·선대인기자>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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