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찬식/10대들의 화풀이

  • 입력 1999년 12월 13일 19시 56분


인간의 마음 속에는 깜짝 놀랄 정도로 많은 양의 분노와 미움, 복수심이 감춰져 있다고 한다.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이런 분노는 대개 어린 시절에 축적된 것으로 사람들은 자신에게 이런 감정이 내재되어 있는지조차 모른 채 살아간다는 것이다. 어린 아이들은 어른이 될 때까지 수도 없이 좌절을 겪게 마련이다.

▽따라서 사람들이 때때로 화를 내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또 화를 억지로 참는 것보다는 적당히 표출하는 것이 스스로를 위해 바람직한 경우가 많다. 분노는 어디든 출구를 찾아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 속성이 있다. 무조건 화를 억누르게 되면 분노가 언젠가 자기 자신을 공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화풀이는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범위에서 이뤄져야 한다.

▽10대들이 술을 팔지 않는다는 이유로 가게에 불을 지르고 문을 부수는 등 행패를 부린 사건이 잇따라 일어났다. 인천 호프집 화재참사를 계기로 당국이 청소년에게 술과 담배를 팔지 못하도록 단속을 강화하고 상인들도 벌금 등 엄격한 처벌조항을 의식하면서 두드러진 현상이다. 감정조절 능력을 채 갖추지 못한 10대들의 폭력적인 화풀이 방식이 놀랍기 그지없다. 코흘리개 아이들이 제맘대로 되지 않는다고 막무가내로 떼를 쓰는 것과 다를 게 무엇인가.

▽청소년 문제가 늘 그렇듯이 10대들을 이렇게 만든 어른의 책임을 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을 분노하게 만든 것은 원하던 술을 손에 넣지 못해서가 아니라 얼마전까지 술과 담배를 거리낌없이 판매하던 상점 주인들이 갑자기 얼굴을 바꿔 주민등록증을 요구한 데서 기인했을지 모른다. 어느 정도 세상 물정을 알아야 할 10대들의 ‘정신 연령’을 이처럼 유아기에 머물도록 방치한 것은 또 누구인가. 경찰서에 연행되어 고개를 푹 떨구고 있는 이들에게 어른들이 또다른 좌절을 강요하는 것은 아닌지 두려운 마음이다.

〈홍찬식 논설위원〉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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