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지석철展/의자로 본 인간사 단면

  • 입력 1999년 11월 21일 17시 34분


고적한 바닷가에 고물 자동차가 서 있다. 모래사장 위에 수많은 작은 의자들이 트럭에서 쏟아져내린다.

고물자동차와 의자. 고물자동차는 세월의 풍상과 흔적을 느끼게 한다. 그 속에서 쏟아져내리는 의자는….

지석철의 작품 ‘시간, 기억 그리고 존재’. 그의 작품에는 의자가 주된 소재로 등장한다. 뼈대만 앙상한 의자들이다. 앉으려 해도 앉을 수 없다. 그리고 너무 작다.

지석철의 작품에 등장하는 의자는 인간생활의 면면을 상징한다. 의자는 의자이되 제 기능을 할 수 없는 의자처럼 주변에서 외면받고 제대로 활동하지 못하는 삶의 씁쓸함을 느끼게 한다. 그림에서 버려지는 의자처럼 세상에서 버려지는 인생이 어디 한둘이랴.

그가 27일까지 서울 종로구 관훈동 노화랑에서 개인전을 연다. 최근 회화작품 30여점이 전시된다.

‘예사롭지 않은 날’이라는 작품에서는 무너진 벽틈에 몰려있는 의자들을 그렸다. 무너진 희망 속에 아우성치는, 혹은 인생에 놓인 장벽을 허물려다 쓰러진 인간군상의 목소리가 담겼다.

“내 작품은 인간사의 단면을 애정있게 표현한다는 점에서 휴머니즘을 바탕으로하고 있습니다.”

그는 홍익대 졸업후 극사실주의 화풍을 추구했다. 그러나 사진같이 정교하며 기계적인 세밀함을 담기보다는 사물의 독특한 질감을 먼저 표현하려 했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극사실주의와 다르다.

의자를 소재로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개념적이거나 추상적인 그림을 그리기보다는 일상적인 소재를 다루려했고, 편리함을 주면서도 너무 흔해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점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판화는 물론 입체 작품도 만들어오다 다시 회화로 돌아섰다. 02―732―3558

〈이원홍기자〉blue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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