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맨 칼럼]정갑영/與野정쟁 따끔한 비판 아쉽다

  • 입력 1999년 11월 14일 18시 50분


요즘 정치권을 보는 독자들의 심정은 어떠할까. 야당은 장외로 돌아다니며 원내에서 못다한 ‘한풀이’를 계속하고 여당은 여당대로 모든 사법수단을 동원해 ‘용서할 수 없는 야당’과 극한대립을 벌인다. 국민의 혈세로 녹을 받는 선량들이 열린 국회는 외면한 채 산적한 민생과 경제현안을 제쳐 두고 정쟁만 일삼으니 국민이 분개하지 않을 수 없다. 올해도 어김없이 회기말에 가서야 예산을 졸속으로 심의하고 수백 건 법안을 무더기 통과시키는 통상 코스가 기다리는 것 같다. 그런 정치문화에 길들여진 서민들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는 구제불능의 풍토병으로 치부해 버리기도 한다.

언제까지 이런 정치권의 모습을 방관해야만 하는가. 언론은 지난 주에도 ‘언론장악 문건’을 둘러싼 공방과 조사에 가장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여야 공방에서부터 하드디스크 얘기와 ‘풀어야 할 궁금증’을 장황하게, 지루할 정도로 장황하게 해설했다. 독자들은 이제 그 ‘문건’ 얘기만 나와도 식상할 지경이 돼 버렸다. 그 많은 정치기사에도 불구하고 ‘꽉 막힌 정치권’을 질타하는 내용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언론이 왜 그렇게 정치권에 관용을 베푸는지 알 수가 없다. 기업이나 공공부문을 질타하는 목탁이 왜 정치권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는지 독자들은 알고 싶어한다.

그 의문이 ‘문건’과 ‘정국파행’으로 가득찼던 지난 주 신문을 보며 가장 아쉬웠던 부분이다. 언론은 파행으로 치닫는 정치권에 무언가 할 말을 해야 한다. 다른 부문에서는 문제의 정곡을 찌르는 목탁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한 사례도 많이 있었다. 수도권 지역의 소각장 문제를 다룬 ‘맑은 사회를 위한 기획’, 유전자변형 식품의 유해여부에 대한 전문가 기획, 자유와 자연을 사랑한 레제르의 만화집에 대한 해설은 모두 문명 속에 잃어가는 자연의 모습과 인류의 구원을 갈구하는 미래 지향적인 감각을 보여주었다. 금융계좌 추적권의 남발과 정보화 시대를 구석기 법률로 통제하는 정부의 나태함을 모두 1면 톱 기사로 다룬 것도 다른 매체를 앞서가는 편집 감각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이런 관점에서 ‘구석기 시대의 법규’를 정보화 사회에 적용할 수 있는 새로운 제도로 개혁시키는 것도 매우 시급한 과제이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국경을 넘는 사이버 거래가 ‘생각의 속도’ 만큼 빠르게 이루어지지만 관계 법규는 아직도 산업화 시대에 머물러 있다.

계좌추적 남발과 같은 개인정보 몰래보기 문제의 심각성은 어떤 것과도 비교될 수 없다. 우리 사회 저변에 깔려있는 불신을 증폭시키고 권력있는 부서는 언제라도 법규를 어길 수 있다는 관행을 만들어 주는 권위주의 문화를 토착화시키기 때문이다. 정보의 투명성과 공정한 공유를 강조하고, 엄격한 개인정보 보호를 기반으로 제정된 금융실명제의 근간을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더 이상 도청과 감청으로 대변되는 ‘남 훔쳐보기’가 제도적으로 수용될 수 없다는 사회적 합의를 대변해야만 한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지 10주년이 되는 역사적 사건은 세계적인 뉴스가치가 있다. 아직도 분단상태인 한국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습이 3일간(8,10,11일)에 걸쳐 신문의 얼굴인 1면에 연속 게재된 것은 아침의 신선함을 떨어뜨린 아쉬움이 있다.

정갑영(연세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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