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오래된 정원(271)

  • 입력 1999년 11월 14일 18시 50분


이듬해 팔십 육년 여름까지 나는 개인전과 논문을 준비하면서 보냈다. 이듬해에 대학원을 마칠 예정이어서 어디 강사 자리라도 얻으려면 둘 다 열심히 해둘 작정이었다. 나는 정희가 결혼 하고나서 겨울에 집으로 돌아갔다. 역시 정희의 말대로 우리 세 식구는 서로 편하게 자기 생활을 해나갈 수 있었다. 어머니는 시장에 아예 건물을 지어 임대를 하면서 원단에서 제조까지를 처리하는 큰 점포를 운영 중이어서 그전처럼 새벽에 나가 밤 늦게야 돌아오는 고달픈 일상이 아니었다. 오후에 나갔다가 저녁 식사 무렵에는 돌아왔다. 은결이는 다섯 살인데 보통 보다는 조숙하고 똘똘한 편이어서 유치원에 보냈다. 은결이는 오전 내내 유치원에 있다가 열두 시쯤에 어머니나 아줌마 또는 내가 번갈아 데리러 갔다. 그런 틈틈이 나는 학교에 나가거나 화실로 가서 틀어박혀 있었다.

학교에서 돌아가는 형편을 보면 자민투다 민민투다 하면서 운동 노선을 두고 그들 말대로 사상투쟁이 한창이었다. 나는 다른 지식인 대중처럼 그들의 슬로건이 특화되어 있는 게 못마땅했다. 반파쇼 자주화나 개헌과 민중 문제는 기본 원칙이고 둘이 아니라 하나이며 다만 시기에 따라 전술적 깃발을 바꾸어 들면 될텐데. 상반기 내내 시위와 농성투쟁이 그치는 날이 없었다. 특히 그맘때 인천에서 벌였던 대대적인 시위와 농성은 슬로건과 깃발의 대홍수였다고 한다. 그래도 세상이 조금 나아졌는지 고리끼의 책 몇 가지가 나와서 주소 없이 현우씨에게 부쳐 주었다. 들어갔는지 확인할 길은 없었다.

방학 중인 어느 무더운 날 나는 화실에 있었다. 은결이는 정희네를 따라서 바닷가에 가있었고 어머니도 친구들과 더불어 산사에 가버렸다. 텅 빈 것 같은 집에서 아줌마와 말도 없이 며칠을 보내다가 화실로 돌아온 참이었다.

그 무렵에 나는 뒤늦게 중국의 노신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목판화 작업에 흥미를 가지고 소박한 형상의 판화 작업에 매달려 있었다. 칼로 매끄러운 목판을 파고 있노라면 나뭇결이 깎이는 소리가 부드럽게 들리고 나무 향내가 났다. 벽가에는 내가 파 두었던 목판과 찍어낸 판화가 여러 장 걸려 있었다. 저녁 때까지 일하고 이젠 밥을 먹으러 나갈까 하고 있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세요?

문 밖에선 아무 대답이 없다. 나는 궁금해져서 얼른 문을 열고 말았다.

아니 이게 누구…?

언니 접니더. 저 알아보겠어예?

나는 그네를 알아보지 못했다. 다만 귀에 익은 경상도 사투리로 짐작했을 뿐이었다.

가만있어 봐, 미 미경이 아냐?

기억하시네예.

어서 들어와.

우리는 문 앞에 있는 소파에 마주 앉았다. 나는 최미경의 모습을 찬찬히 살폈다. 머리는 예전 우리 여고생처럼 귀 밑에서 쌍둥 자른 단발머리였고 얼굴은 화장기는커녕 크림도 제대로 바르지 않았는지 꺼칠해 보였다. 더워 보이는 곤색 티 셔츠에 헐렁한 면바지를 입고 있었다. 아마도 너무 평범하고 튀지 않아서 길거리에 나서면 사람들의 몸 사이로 사라져버릴 것만 같다. 그런데 미경이는 이제 학생처럼 보이질 않는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으응, 그러구 보니까 생각난다. 아직두 공장에 나가는 모양이지?

<글: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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