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서영훈/소주세율 올려야하는 이유

  • 입력 1999년 11월 9일 19시 58분


세계제국 로마는 북유럽 너머로 국토를 넓히지 않았다. 포도를 재배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기후의 땅을 차지한들 쓸모가 없다고 본 것이다. 로마인들이 포도주를 사랑한 것처럼 각 민족은 수천년 이어져 내려온 고유의 술에 무한한 애정을 갖고 있다. 프랑스의 와인, 독일의 맥주처럼 우리에게는 소주가 있다.

최근 소주의 세율을 올리려는 정부의 주세율 조정안을 두고 업계 학계 소비자들의 의견이 분분하다. 정치권에서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표심을 곁눈질하며 언성을 높인다.

우리 고유의 술 소주의 세금을 타율에 의해 올려야 한다니 안타까울 뿐이다. 이번 주세율 조정은 위스키와 소주의 세율을 같게 하라는 세계무역기구(WTO)의 판정에 따른 것이다. 위스키는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고가주임에도 불구하고 70년대 이래 세율이 계속 낮아졌다. 전적으로 미국 유럽연합(EU) 등 위스키 생산국의 통상압력 때문이다. 이번 위스키세율 인하는 지난해 세계무역기구 패널에서 패소한 데 따른 것이다. WTO 체제에서 국제적으로 표준화된 규범이 적용되는데도 정부가 유연하지 못한 태도로 수입 위스키로부터 소주를 보호하려다 낭패를 당했다. 일본도 몇해 전에 같은 경우를 당해 어쩔 수 없기는 하지만 우리 스스로 주세율을 조정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정부가 미리 소주세율을 조금씩 인상했던들 외압에 의한 위스키세율 인하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선진국들은 그동안 독한 술에 대한 세율을 계속 올렸다. 이들이 세율을 올리려 할 때 조세 저항이 없었을 리 만무하다. 이들은 독주 소비의 억제 필요성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데 성공했다.

지지기반이 빈약한 역대 정부는 장기적으로 국민에게 이익을 주지만 단기적으로 고통스러운 정책을 추진할 능력이 없었다. 이런 결과 한국은 국민 1인당 알코올소비량이 세계 1,2위를 다투고 위스키 수입대국이라는 불명예를 감수하게 됐다.

정부자료에 따르면 소주세율을 80%로 올리면 소비자가격에서 세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40% 수준이다. 선진국들은 소주 같은 고도주(高度酒)에 높은 세금을 붙여 세금비중이 60%에 이른다.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독한 술에 많은 세금을 부과하면서 다른 나라에 대해서는 세금을 터무니없이 낮추라고 요구하고 있다. 선진국들이 각종 금연 캠페인과 손해배상 소송 등으로 담배산업이 사양길에 접어들자 개도국 시장을 억지로 개방하도록 밀어붙여 담배수출을 늘리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여야는 정부가 마련한 소주세율을 국회에서 더 낮추려고 하는 것 같다. 그러면 위스키세율을 또 낮춰야 하는데 정치적으로 민감한 서민 대중주인 소주세율만 물고늘어지면 위스키세율이 저절로 내려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EU와 미국의 의도를 우리 정치인들은 모르는 것인가? 소주세율을 내리면 소줏값이 내리는 것보다 위스키 값이 훨씬 큰 폭으로 낮아진다. 몰라서 그러는지 알고서도 그러는지 모르지만 국회의원들은 위스키를 팔겠다고 나선 나라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는 꼴이다.

서영훈〈신사회공동선운동연합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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