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임연철/문화특구

  • 입력 1999년 10월 10일 19시 39분


내년 미국 뉴욕주 상원의원선거에서 현직 대통령부인 힐러리여사와 대결하게 될 루돌프 줄리아니 뉴욕시장은 무엇보다 자신의 재임중 뉴욕시의 범죄율 감소와 음란산업 추방을 최대업적으로 자랑할 것이 틀림없다. 이중 ‘뉴욕시의 수치’라고 불릴 만큼 매춘부와 라이브쇼 포르노 숍 등으로 뒤덮였던 맨해튼 42번가 일대를 대형 뮤지컬극장들이 들어선 문화의 거리로 탈바꿈시킨 업적은 문화사에 기록될 만한 공로로 꼽힌다.

▽경찰들을 집중배치해 일반인들의 기피지역이 되게 하고 음란산업 대신 다른 사업을 할 경우 세제혜택을 준 줄리아니의 전략은 주효해 요즘 맨해튼에서 섹스관련 극장이나 상점 등을 찾기가 어렵게 됐다고 한다. 특히 음란산업의 쇠퇴로 값싸게 나온 건물터에 뮤지컬이나 연극공연장을 세워 세계의 관광객을 모으고 그에 따른 뉴욕시의 수입이 음란산업이 번성할 때의 몇배라고 하니 말 그대로 일석이조(一石二鳥)의 효과를 거둔 셈이다.

▽42번가와는 다르지만 서울 인사동 대학로와 같은 지역을 문화예술진흥법을 개정해 법적으로 보호하는 ‘문화지구’로 지정한다는 소식이다. 이미 ‘문화의 거리’로 선포된 지역이지만 선언에 그친 탓으로 그후 우후죽순격으로 늘어난 것은 술집 등 유흥시설 뿐이었음을 감안하면 만시지탄의 느낌이 없지않다. 대학로에서 연극을 하고 싶어도 어떻게 술집과 임대료경쟁을 하겠느냐는 연극인들의 오랜 푸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소금일 수 없듯이 ‘극장없는 대학로’‘옛 향기가 안나는 인사동’은 존재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게 된다. 별다른 특색도 없는 거리를 젊은이도 관광객도 찾을 이유가 없다. 문화지구의 문화시설이나 장려업종에 대해서는 조세감면 건축기준완화와 같은 인센티브를 준다는 것이 입법예고된 개정안의 주요 내용이다. 개정안이 취지대로 입법되고 ‘한국판 줄리아니시장’ 같은 인물이 곳곳에서 나와 시민의 사랑을 받는 문화의 거리가 도시마다 들어섰으면 하는 바람이다.

〈임연철 논설위원〉ynchl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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