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정원/중국의 용틀임 상하이타워

  • 입력 1999년 10월 6일 18시 43분


중국인민외교학회 초청으로 건국 50주년을 맞은 중국을 둘러보며 인구 12억의 거인국이 거대한 보폭으로 성큼성큼 미래를 향해 전진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가난의 흔적과 사회주의 통제체제로 답답한 느낌을 주던 베이징 거리는 부의 윤기가 흐르고 개방과 활력이 넘치는 새로운 거리로 탈바꿈했다. 전국의 특급호텔에는 외국인 관광객과 기업인들이 넘치고 국제 박람회와 세미나, 투자유치 설명회가 한창이었다. 미국식 자본주의의 상징인 맥도널드 체인점이 베이징에만 100여 곳에 이르렀다.

상하이는 19세기 말엽에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등 서방 강대국의 함포 외교에 무릎을 꾼 청나라가 열강에 조계를 허용했던 중국 근대사 수모의 현장이다. 이 도시는 지금 중국 현대화의 견인차로 우뚝 서 있다. 공항과 도심을 잇는 하이웨이에서 목격한 상하이의 자태는 ‘동방의 뉴욕’이라는 찬탄을 받기에 손색이 없었다.

상하이 동방명주(東方明珠·일명 상하이 타워)라는 초현대식 전망대 건축물은 468m로 세계에서 세번째로 높은 건물이다. 동방명주가 갖는 의미는 건물의 고저가 아니다. 이처럼 세련된 첨단 건축물을 보유할 수 있는 중국의 감각과 국력을 응변해준다는 데 더 큰 의미를 두고 싶다.

양쯔강과 태평양이 만나는 황푸강 입구, 타워가 서 있는 광활한 주변공간에 끝없이 펼쳐진 수많은 마천루의 웅장함에 한편으로 놀라고 두려운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동방명주는 분명히 상하이의 자부심인 동시에 중국번영의 상징이다. 때마침 ‘포천 500’이 상하이와 공동으로 주최하는 국제회의가 타워 건너편에 위치한 한 호텔에서 열렸다. 세계 500대 거대 기업들을 유치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상하이에 대한 국제적 관심도가 지대함을 알 수 있었다.

외국 관광객들로 가득 찬 타워전망대에서 거대한 공룡의 거보(巨步)를 목격하면서 불현듯 서울의 명소 63빌딩을 연상하게 된 것은 두 건물이 갖는 유사성 때문만은 아니었다. 한강의 기적으로 일컬어진 한국 경제 발전, 이를 상징이라도 하듯 한강변에 버티고 있는 63빌딩의 황금빛 위용은 한국의 경제력과 부(富)를 대변하는 상징물로 간주돼 왔다. 그러나 지금 서울 최고(最高)의 명소는 경제 파탄과 재벌 몰락의 징표로 전락했다.

근자에는 새로운 밀레니엄의 시대에 한국이 초일류 국가가 돼야 한다는 구호로 넘쳐나고 있다. 지구상의 어느 국가인들 21세기의 낙오자가 되고 싶겠는가. 문제는 말이 아니라 행동이다. 중요한 것은 ‘빨리 빨리’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하나씩 이루는 것이다. 중국보다 먼저 근대화를 이뤘다고 우쭐했던 기분은 이쯤에서 접어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불과 몇 년 전 중국 관광길에 달러를 뿌리며 호기를 부리던 우리가 이제 와선 중국 위안화의 평가절하 가능성에 안절부절못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이제 겸허한 마음으로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고 중국을 다시 보자.

김정원<세종대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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