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오래된 정원(221)

  • 입력 1999년 9월 14일 18시 38분


하는 수 없이 어머니가 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랬다지. 얘야 니가 몹쓸 병이 걸려서 보내는 거야. 거기 가서 병이 나으면 다시 집으로 돌아오너라. 타일렀더니 메리는 새끼줄에 목이 매인채로 몇번씩이나 집쪽을 돌아다보며 미장이 아저씨에게 끌려 갔다는 것이다.

검은 털의 강아지는 내가 일 학기 말에 일등을 해서 어머니에게 약속을 지키라고 떼를 쓰고 얻게 된다. 통신표가 나오자마자 개를 사 내놓으라고 떼를 썼는데 어머니가 매를 들고 달려나오면 멀찍이 뛰었다가 다시 돌아와 울고 불고 발버둥치고 하여 성화에 못견딘 어머니가 내 손목을 잡고 영등포 시장 닭전에 가서 강아지를 사준다. 한 닷새쯤 살았을까. 나는 강아지를 못살게 굴었다. 가져오자마자 수돗가에 데려가서 찬물로 목욕을 시키고 찐고구마를 잔뜩 먹이고 했더니 어른들 말로 밑구녕이 쭉 빠지는 치명적인 병에 걸린다. 나는 강아지의 이름도 채 못지었지. 나가 놀다가 돌아와 보니 뒷마당 판자 담 아래 뻣뻣하게 죽어 있다. 어찌나 화가 나는지 그 놈을 신문지에 둘둘 말아 싸가지고 둑 너머 샛강에 갖다 버린다. 자운영이 가득 핀 둑의 중간쯤에까지 내려가 휘익 던졌더니 풍덩, 하는 물소리가 나고 잔잔하던 저녁 강에 파문이 널리 퍼져 나간다. 그런데 지금도 또렷한 것은 신문지 따로 강아지의 주검 따로 떠올라서 천천히 흘러 내려가던 모양이다.

돌쇠는 갈색 털의 덩치가 큰 수캐였는데 그 놈도 내가 학급 동무에게서 강아지 때 얻어 왔을 것이다. 녀석은 반년이 조금 넘자마자 다 커버렸고 벌써부터 발정이 나서 동네 암캐들 따라 다니노라고 집을 비우기가 일쑤였다. 하루 이틀 어디로 싸돌아 다니는지 꼬리도 보이지 않다가 느닷없이 주둥이며 귓가에 피딱지가 앉은 험한 꼴로 비칠비칠 들어와서는 내 휘파람 소리에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곧장 수돗가로 직행한다. 그리고는 함지에 받아 놓은 물을 껄떡껄떡 한정없이 마신다. 한참 마시다가 숨이 찬 듯 혀를 빼물고 잠시 헐떡이다가 다시 마신다. 녀석은 내가 잘못 내던진 돌에 정통으로 머리를 맞아 눈이 먼다. 집에 도둑이 들었던 날 하필이면 제 집에 처박혀 있으면서 짖지도 않았던 것이다. 애꾸가 되어버린 돌쇠는 어느 해인가 나가서 돌아오지 않는다.

나는 어째서 그렇게 애증의 변덕이 심했던 걸까. 자기 자신에 대해서까지도. 아무 것도 먹지 않은지 보름이 되어가면 이틀이 멀다하고 의무실에서 혈압을 재러 온다. 물론 혈압은 전보다 훨씬 떨어져 있다. 물 맛이 유별나게 좋아진다. 수염이 길게 자라고 피부도 꺼칠해 보이지만 눈 속은 맑고 빛나 보인다. 관구 주임들이 번갈아 드나들며 사과를 놓고 가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보온병에 된장국을 끓여서 냄새를 맡도록 하기도 한다. 나는 오후에 폐방 시간이 가까울 무렵에 관구실로 찾아가 그들에게 고스란히 돌려준다. 그들은 강제 급식을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나는 그렇게 하면 고문행위로 고발하겠다며 맞선다. 십팔 일째나 이십 일째가 되면 분명히 완전한 관철은 아니지만 엇비슷한 타협안이 나온다. 그러나 여기까지가 마지막 고비다. 그들이 이쪽의 안을 완전히 받아들이도록 하려면 단식은 쓰러질 때까지 끝나지 않으리라는 태도를 보여 주어야만 한다. 이 마지막 고개는 참으로 길고 지루한 비탈길임에 틀림없다. 한 이삼 일만 더 버티면 된다는 조급함이 아랫배에서 안달이 되어 올라오기 때문이다. 갑자기 시간이 정지해 버린다. 낮은 길고 밤은 새지 않는다.

<글: 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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